대장동 사건을 잘 아는 사람들 눈엔 훤히 보이는 것이다.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8일 사표를 냈다. 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김만배 등 피고인 5명에 대해 항소 포기를 결정한 지 하루 만이다.

대장동 수사 검사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하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 김만배 등 범죄자들의 형량이 가벼워지게 되는 건 불문가지. 사법 정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수사팀 검사들은 "법무부 정성호 장관과 이진수 차관이 항소에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쯤 되면 검찰의 항소 포기를 놓고 법무부·검찰총장·대검·중앙지검장 등 수뇌부의 사전 논의가 있었다는 건 뻔한 일로 보인다.

일선 검사들이 반발하고 언론이 가세하자, 9일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대장동 사건은 법무부 의견 등을 참고한 후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하나마나한 소리를 해명이랍시고 내놓았다. 대장동 사건 자체가 이재명 대통령까지 연루돼 있다 보니 서둘러 ‘재판 종결’하자는 속셈이 훤히 보이는 것 아닌가. 용산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 지시에 개입했느니 마느니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일 대통령실 등 외압 행사 여부에 대한 국정조사를 제안했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 대장동 사건은 어떻게 되나. 검찰이 추정한 수천억 원대 개발이익을 국고로 환수하는 일이 어렵게 된다. 민관 공동으로 추진된 대장동 사업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는 1830억 원을, 김만배·남욱 등 민간업자들은 무려 7886억 원의 부패 수익을 올렸다. 검찰은 성남도개공의 손해액을 4895억 원으로 산정하고 추징을 요구했다. 이 배임액에 대한 국고 환수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범죄자가 이익을 보고 국민이 손해보게 된다.

가뜩이나 1심 재판부가 특가법상 배임이 아닌 업무상 배임으로 판단해 배임액도 473억3200만 원으로 크게 줄어든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검찰이 항소심에서 다퉈야 한다는 검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갑자기 윗선에서 항소 포기 압력이 나온 것이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 범죄자들의 형(刑)은 줄어들고, 훗날 이들이 어딘가에 숨겨놓은 추징금도 결국 이들의 몫이 되는, 매우 기분 나쁜 영화 같은 결말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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