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현
이태현

영화 ‘빅 히어로’에 나온 마이크로봇(Microbot)이 현실화 됐다. 이 영화에서는 수많은 작은 로봇들이 스스로 구조물로 변하고 장비로 변하는 등 인상 깊은 활약을 보여줬다. 이러한 마이크로봇이 현실에서, 대한민국 한양대학교 유기 나노공학과 연구팀에서 탄생했다.

길이가 불과 600μm(마이크로미터)인 이 로봇들은 자성을 이용해 서로 결합함으로써 개별적으로는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것들이 힘을 모으면 단일 로봇보다 300배 무거운 살아있는 공벌레를 강제로 운반할 수 있고, 먹이를 향해 다가가는 슈퍼웜도 막아낸다.

연구팀은 개미에서 영감을 받아 이 로봇을 개발했다고 한다. 개미들은 홍수가 발생하면 자신들의 몸으로 튼튼한 뗏목을 만들어 서로를 보호한다. 견고하게 만들어진 개미뗏목은 수면 위에서 최대 12일까지도 버틴다고 한다. 개미들이 보여준 이 협력의 가치는 마이크로봇 탄생에 큰 영감을 주었다.

마이크로봇은 작동 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된다. 광학·음향장·자기장 등의 외부 자극을 통해 작동하는 ‘외부 필드 구동’과 로봇 자체의 배터리나 연료를 탑재해 구동하는 ‘자가 구동’으로 나뉜다. 외부 필드 구동을 이용하려면 외부 자극을 인식할 수 있는 센서가 필요하고, 자가 구동을 이용하려면 배터리가 필요하다. 배터리를 넣으면 크기와 무게가 증가하고 복잡도가 상승한다. 그러므로 해당 마이크로봇은 배터리를 뺀 외부 필드 구동 형태로 개발됐다. 여기에 만약 자성만 띤다면 센서도 필요 없다는 계산이 나오니, 최적의 형태로 ‘자성을 이용한 외부 필드 구동’이 선택된 것이다.

그동안 여러 형태로 개발돼 온 마이크로 로봇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과거의 집단 소형 로봇 연구도 자성을 이용한 로봇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둥근 구(球) 형태의 로봇이라 접촉하는 면적이 좁아 집합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전체적인 수행 능력에 영향을 미쳤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한양대 연구진은 큐브 형태의 로봇을 계획했다. 직육면체 형상은 면 대 면 접촉을 일으켜 접촉 강도가 증가할 것이고, 그러면 보다 나은 수행 능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접촉 강도가 강화된, 자성을 이용한 로봇의 집단 행동은 어마무시했다. 단일 로봇보다 1600배 무거운 장애물을 들어 옮겼으며, 6700배 무거운 구형 화물을 굴릴 수 있고, 3300배 무거운 직육면체 장애물도 밀어 넘어뜨렸다. 개미뗏목처럼 높은 패킹 밀도로 로봇들이 빈틈없이 결합되기 때문에 물 위에서도 단일 로봇 무게의 2000배에 달하는 알약을 안정적으로 띄워 운송했다. 더 나아가 전도성 덩어리를 모아 전등을 켜는 섬세한 제어 작업도 거뜬히 수행했다.

힘 외에 자성을 이용한 절삭도 가능했다. 마이크로봇 무리에게 외부 회전 자기장을 걸면 모든 로봇이 일정한 궤도를 그리며 빠르게 회전하게 된다. 이 회전력으로 칼륨·인듐 합금으로 만든 액체금속을 5초 만에 분리했다. 이 액체금속은 단일 로봇 무게에 1만 배에 달하는 질량을 가졌지만 마이크로봇의 회전 충격 앞에서는 순식간에 갈라진 것이다.

연구진이 보여준 마지막 시연은 혈관이 막혔을 때다. 막힌 혈관 재현을 위해 혈관 크기의 튜브에 혈전보다 더 단단한 두부를 채운 뒤 마이크로봇들을 투입했다. 로봇들은 위의 모든 시연장면들을 응용해 40초 만에 두부를 갈아 그 조각들을 운반함으로써 재폐색 위험까지 줄였다.

영화보다 더 SF적인 현실에 살고 있는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이런 멋진 기술들이 제대로 된 투자자와 사용처를 만나 확고하게 대한민국 고유 기술로 세계로 퍼져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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