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불안 지속으로 원·달러 환율 1400원대가 익숙해지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이 1450원까지 올라갔다. 이는 지난 1997~1998년 외환위기, 2008~2009년 금융위기 외에는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이다. 외환당국이 환율방어를 하는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외환 위기론도 제기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계엄 사태 이후 지난 3일 야간 거래에서 1442.0원까지 뛰면서 단기 저항선을 1450원선까지 끌어 올렸다. 1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는 전날보다 10.1원 내린 1426.9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하락 반전했다. 그러나 11일 5.3원 오른 1432.2원으로 마감해 다시 머리를 위로 들었다. 큰 폭의 오름은 아니지만, 1400원대에서 고착화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는 의견과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주장이 혼재하고 있다. 특히 지난 일주일간의 환율 변동 그래프를 보면 당국의 개입 흔적이 눈에 띈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당국의 개입이 없다면, 환율 상승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고환율이 지속된다면, 우리 경제는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이유정 하나은행 연구원은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더 위축될 수 있다"며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출되면 경제 하방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환당국이 공격적으로 시장 개입을 할 경우 외환보유액이 대규모로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53억9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2021년 10월 4692억1000만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뒤 이후 감소하는 추세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해 급상승 곡선을 그릴 경우 당국이 시장 개입에 나설 수 밖에 없고, 외환 보유액은 4000억달러 아래로 쪼그라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은은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거래 등으로 ‘컨틴전시 플랜’(상황별 대응 계획)을 가동할 예정이지만, 단기 처방으로 환율 방어가 가능할지 미지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환율 시장에 외환보유액을 소진하면 외화 부족이 다시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며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외국인 투자자의 자본 유출이 빨라지고 내국인 자본 유출도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