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폐지 대신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제 도입"...기업 비상
주주 존중으로 포장된 반기업적 제도...기업 가치 오히려 하락
주주-이사 간 책임 관계 생기면...M&A·구조개편 때 소송 남발
개정 땐 기업사냥꾼 이익도 보장하는 어불성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얼핏 듣기에 경제를 걱정하는 듯 들리지만, 이 대표의 좌파 반기업 본색은 감출 수 없었다. 금투세를 수용하는 대신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제도 도입(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게 그것. 이 개정안은 그간 경제계와 자유주의 경제학계에서 한목소리로 반대해 온 대표적인 반기업 법안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상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이 개정안은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기업에 적대적인 민주당의 좌파 본색이 감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은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한 상법 382조3을 ‘회사와 주주(또는 총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수행한다’로 바꾼 것인데, 이로 인하여 회사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이사(경영진)와 주주간 직접적인 책임관계가 생기면 기업의 성장을 위한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주주들이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할 우려가 크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경제학·바른사회시민호의 상임대표)는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까지 확대되면 대표소송이나 업무상배임죄 처벌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소액주주가 소송을 제기하면 피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렇게 되면 기업 발전이 저해되어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경영계는 기업들이 소액주주의 요구에 떠밀려 미래를 위한 투자 대신 단기 주가 부양을 위한 배당, 자사주 소각에 더 많은 자원을 쓰게 될 공산이 크다고 우려한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갉아먹을 거라는 것.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기업 친화적인 미국에서도 인수합병 건당 평균 3~5건의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되는데, 소송 사유 대부분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신인의무(충실의무) 위반이다. 이때 신인의무란 이사가 자신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충돌할 때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경우 2009~2018년 상장사 M&A 1만 928건(1억 달러 이상) 중 매년 71∼94%가 주주대표소송을 당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민법상의 위임계약에 근거해 이사의 책임 범위를 설정한 우리 상법에 미국식 이사 신인의무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법체계에 전혀 맞지 않다"면서 "주주에게 별다른 이익도 없고 기업들은 소송에 시달려 기업 가치 하락의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기업 사냥꾼들의 먹이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동근 교수는 "기업에 투자하는 주체는 ‘장기투자자, 단기투자자,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기금, 국내외 행동주의펀드 및 경영권 공격 세력, 일반투자자’ 등 다양하다. 각각 다른 동기와 이유로 주식을 보유하는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동시에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하고 "모든 주주를 다 비례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상법 개정안 대로면 ‘엘리엇펀드’ 등 기업사냥꾼의 이익도 보호해야 한다. 그 자체가 블랙 코미디"라고 비판한다.
민주당은 주주가 특정 이사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집중투표제’ 강화, 기업의 미래를 위한 대주주의 결단을 무력화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확대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선진국들과 달리 포이즌 필(poison pill), 차등의결권 같은 방어 수단이 전혀 없는 가운데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경영권을 방어하느라 기업 발전보다 엉뚱한 데 에너지를 소모할 것이라는 게 경영계의 예측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제도는 오랫동안 좌파 진영의 두뇌 역할을 해 온 참여연대에서 대기업 공격을 위한 방법으로 시작된 소액주주운동에서 비롯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과 이 대표가 겉으로는 경제를 걱정하며 중도를 향해 한걸음 우클릭하는 듯하지만, 뼛속부터 반기업‧반시장인 정서는 어찌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 대표의 최근 행보를 보며 무죄 호소인이 1심 선고를 눈앞에 두고도 대통령 꿈을 못 버리는 모양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달 중으로 예정되어 있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및 위증교사 혐의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확실시되고 있음에도 이 대표가 야권 대선주자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을 비꼰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재앙의 5년을 불러온 문재인 시즌2는 피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경영권 방어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