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전경우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건달 유오성이 다수의 깡패와 맞선다. 유오성은 "나는 한 놈만 팬다"며 엉겨 붙는다. 진짜, 한 놈만 두들겨 팬다. 적들의 주먹이 쉼없이 날아들지만, 그럼에도 한 놈만 팬다. 중과부적, 그런 것 없다. 수적 열세에도 한 놈만 팬 놈이 이긴다.

‘한 놈’ 전략이 아주 잘 먹혀들고 있다. 목표는 김건희 여사다. 집요하고 끈질기게, 아주 모질게 두들기고 있다. 때리다 지치면 말겠지, 싶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 속셈이 무엇인지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웬걸, 이게 먹히기 시작했다.

몰래 카메라로 가방과 향수를 주고 그것을 빌미로 싸움을 걸어온 자들이다. 비열하고 저급하다. 그게 함정이라는 걸 알지만, 싸움의 기세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주술에 걸린 것처럼 거미줄에 걸린 나방 신세처럼, 난처하고 민망하다.

그 전에도 한 놈만 팬 덕을 톡톡히 본 적이 있다. 최순실을 집중 타격한 덕에 경제 공동체라는 희한한 말이 등장했고, 마침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횡재, 로또 당첨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 그렇게 벌어졌다.

청문회에서 전직 여성 문체부 장관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블랙리스트가 있느냐, 호통치고 눈 부라리며 몰아붙였다. 모멸을 견디며 버티던 그녀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블랙리스트 있습니다. 그 한 마디에 문화판이 뒤집어지고, 고백한 그녀는 감방으로 갔다.

그들은 스스로를 투사라고 한다. 투사란 싸움꾼이다. 싸움에 도가 튼 사람들이다. 평생 싸움을 하고 싸워 쟁취하고 누리고 큰 소리 치며 살아온 파이터들이다. 싸움의 기술에 자격증이 있다면 이들이야말로 자격증 취득자들이다. 훈장처럼 운동권 이력을 내세우며 독립투사 행세를 한다.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전직 건달 두목 백윤식이 어린 병태에게 싸움의 기술을 가르친다. "싸움에 반칙이 어딨어? 싸움엔 룰이 없는 거야." 스포츠에는 룰이 있고 룰을 어기면 벌칙을 받는다. 룰을 지키고 이겨야 이긴 걸로 인정해 준다. 하지만 싸움에는 그런 게 없다. 법에도 없고 양심에도 없다. 룰 같은 것, 없다.

싸움에는 룰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없는 것도 있다 우기고, 있는 것은 없다고 시치미뗀다. 아주 태연하게, 타고난 재주처럼 역사적 사명처럼,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가슴에는 칼을 품고 있으면서도, 민주 자유 인권 정의 평화 같은 말들을 입에 달고 산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이야말로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싸움의 기술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위조와 거짓말, 모함으로 들이닥친 가족 일당이 평온한 남의 가정을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싸움의 기술자들이 기생충처럼 거짓과 모함으로 싸움을 벌이고, 재미를 보고 있지만, 용산의 그들은 영화 속 부잣집 가족들처럼 한가할 뿐이다. 짜파구리를 끓여먹으며 혀끝의 달콤함을 즐기고, 세상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천하태평이다.

왜 용산의 그들만 평화로운지 의아할 뿐이다. 영화 ‘넘버 3’에서 건달 송강호가 강조한 헝그리 정신과 무대뽀 정신이 필요해 보이지만, 기대할 일은 아니다. 난망이다. 그것이 더 비극적이다.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천호진이 말한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딱 두 가지만 알면 돼.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 싸움의 기술에 능한 자들과 용산의 ‘웰빙족’들 모두 이것만큼은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한 쪽에서는 ‘아버지’로 모시고, 다른 편에서는 ‘벌거숭이 임금님’을 만들고 있다. 국민들만 속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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