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신세대의 예의범절이 구설에 오르는 요즘, ‘지옥철’이라 불리는 혼잡한 지하철에서 새삼스러운 모습을 보게 됐다.
앉을 자리는 당연히 없고 설 자리도 비좁고 천정에 달린 손잡이도 차례지지 않았다. 어느 역에 열차가 멎자 앉아 가던 승객이 내리며 자리가 났다. 그런데 그 앞에 서있던 젊은 군인이 자기가 앉을 대신 양보하는 것 아닌가. 감사한 마음 가운데 불현듯 북한에서 목격했던 일이 떠올랐다.
함경북도 길주역에서 열차를 놓치고 고생한 적이 있었다. 어쩌다 한번 들어오는 열차를 놓치면 또 며칠 고생할지 몰랐다. 사흘을 더 기다려 열차가 길주역으로 들어왔다.
열차를 눈 빠지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열차는 승강대까지 꽉 차서 도무지 오를 수 없었다. 창문으로라도 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 창유리마저 다 깨지고 없는 채로 다니던 때였다. 하지만 창턱마다 군인들이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못 오르게 막았다. 역 인근 주둔 부대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혼잡한 열차 상황을 기회 삼아 앵벌이를 하는 중이었다. 열차가 도착하면 차에 타려 붐비는 사람들의 어깨를 군홧발로 밟으면서 먼저 올라가 창문을 하나씩 차지하고는 돈이나 술, 담배를 받고 올려줬다. 열차가 떠나면 다음 역에 내려 다시 돌아와 같은 방식을 되풀이했다.
필자 역시 군인들에게 뭔가 줘야겠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사정 좀 봐달라고 애걸했으나 "안 돼!" 하는 반말만 돌아왔다. 그때 한 노인이 창턱에 앉은 군인의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젊은이, 난 전쟁 시기 낙동강까지 갔다 온 노병이야. 세 끼 굶으며 이 차를 기다렸는데 놓치면 여기서 굶어 죽게 생겼네"하며 사정사정했다. 하지만 젊은 병사는 "왜 나한테 그래? 그게 영감탱이 사정이지 내가 알 게 뭐야"하며 움쩍도 하지 않았다.
끝내 열차는 기적을 울리며 출발하고 창턱에 앉은 병사는 흥에 겨워 왱왱 이런 노래를 불러댔다. "병사가 인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풍요한 들판과 산천에 물어보라."
별안간 노인이 철로에서 돌멩이를 집어 병사의 등짝을 향해 던졌다. 윽! 소리와 함께 뻔뻔스러운 노랫소리가 뚝 끊기고 열차는 멀어져갔다. 하염없이 사라지는 열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노병의 주름진 얼굴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슬프고 쓸쓸한 모습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김정은 정권이 아무리 북한군의 도덕적 우월성과 군민 관계를 포장해 선전해도 그것을 믿는 사람은 북한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