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있을 때 필자는 선행인지 악행인지 구별이 모호한 일을 한 적 있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으나 안된다. 젖먹이 아기를 엄마 품에서 억지로 떼어내 버린 일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선행인지 악행인지 모를 일인가? 그 잔혹한 짓을. 의아할 것이다.
어느 날 퇴근길에 평소 아버지처럼 따르던 한 노인의 집에 들르니 처음 보는 젊은 여자가 와 있었다. 그 여자는 아기를 안고 잘 나오지도 않는 젖을 먹이느라 속을 태우고 있었다. 노인 말에 의하면 그녀의 부모들은 굶어죽었고 친척은 자기 하나밖에 없다고 했다.
들어보니 여자는 살아남기 위해 국수 장사도 하고 빵 장사도 해보았으나 밑천이 적어 끝내 버티지 못했다. 농촌에 가면 굶지는 않을까 싶어 농촌 총각을 소개받아 시집갔다. 농사를 지었지만 해마다 흉년이 들고 당국은 애국미, 군량미 명목으로 수탈을 지속했다. 그 와중에 아이를 낳았고 첫돌도 되기 전 굶어 지내던 신랑이 병들어 죽고 말았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아기를 업고 하나밖에 없는 친척 노인을 찾아온 것이었다. 노인도 굶어 지내는 처지에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며칠 후 다시 노인 집에 가보니 그녀는 장마당을 헤매며 남의 심부름 일을 하느라 아기를 노인에게 맡기고 나갔다. 칠순이 넘은 노인이 아기를 안고 진땀 빼고 있었다.
그 얼마 후 노인이 의논할 일이 있으니 와달라는 기별을 보내왔다. 아기엄마 신상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 예감이 들며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믿고 찾는 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가 남의 장사 짐을 나르던 중 통째로 날치기당해 졸지에 빚더미에 앉은 상태였다. 노인은 엄마와 아기 둘 다 죽을 것 같아 아이를 가지겠다는 사람이 있을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아기 엄마의 동의는 겨우 받았다. 다른 대안이 없어 보였다.
마침 필자의 친구 아내가 부모 없는 영유아들을 키우는 애육원에 다니고 있었다. 찾아가 만나보니 애육원 정문 앞이나 현관문 앞에 밤이면 아기를 몰래 가져다 놓는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부모가 없어야만 애육원에서 받아주기 때문이었다. 결국 친구 아내와 짜고 자정이 넘은 시간 아기를 정문 앞에 가져다 놓으면 안아 들여가기로 했다.
문제는 차마 그 일을 아기엄마는 물론이거니와 노인도 할 수 없어 필자가 해주기를 원했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맡아야 했다. 하지만 아기를 살리고 엄마도 노인도 살릴 수 있는 길은 그뿐이었다. 이를 악물었다. 야심한 밤 독수리 마냥 아기를 엄마의 품에서 와락 뜯어냈다. 울음이 터졌다. 뒤쫓는 아기엄마의 뒷다리를 노인이 잡고 늘어졌다. 뒤에서 울부짖는 소리에 마음 약해질세라 악당이라도 된 듯 애육원을 향해 달렸다.
그날 북한 사회에서 인간의 도의를 지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눈물 속에 절감했다. 결코 옛이야기만이 아니다. 여전히 북한에서 자행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