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남정욱

유럽의 안보 불안이 더 깊어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가운데 이번에는 덴마크 공항 영공에 정체불명의 드론이 출몰했다.

배후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덴마크 정보국은 러시아의 스파이 활동과 파괴 공작 위험이 높다고 돌려 말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화하려는 세력의 조작된 도발이라고 반박했다. 덴마크는 격추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외교적, 물리적 위험이 더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도발에 EU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푸틴이 한 번 찔러 본 거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필자가 바라보는 진짜 핵심은 러시아도 덴마크도 아니다. 그것은 드론이다.

1980년대 초반 처음 등장했을 때 목적은 정찰이었고 고공비행을 통해 군사적 이익을 지원했다. 여기에 무기가 탑재되기 시작한 게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부터다. 2001년 알카에다 목표물에 타격을 입혔고 이때부터 공격용 무기로 본격 전환된다. 최초로 사람을 잡은 것은 2002년이다. 알카에다 고위 지도자 카이드 살림 알하리티가 ‘원격 조종+일부 자율’ 비행 기계에 의해 사망한 인물로 전쟁사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일반인들까지 그 명칭과 정확한 용도를 알 정도는 아니었다. 드론이 속세에 퍼진 건 2010년 이후다. GPS, 소형 카메라,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업용 드론이 등장했고 탐사와 취미의 영역으로 급격히 확산된다. 무엇보다 가격이 좋았다. 실내는 10만 원 미만 비용으로 손맛을 볼 수 있었고 20만 원대면 실외 항공 촬영까지 가능해졌다. 참 기특하고 아름다운 문명의 이기가 공포로 돌변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다.

개전 이후 3년 동안 드론의 진화는 경이적이다. 지난 6월 우크라이나는 117대의 소형 드론을 이용해 러시아 본토의 공군 기지들을 동시다발 타격했다(일명 거미줄 작전). 이 공격으로 러시아 군용 비행기 40여 대가 손상을 입었고 이 중 10여 대는 장거리 전략 폭격기였다.

장거리 전략 폭격기는 핵잠수함, 대륙간탄도 미사일과 함께 핵 억지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엄청난 무기다. 그걸 드론으로 가뿐하게 파괴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러시아 본토에서. 그 사태를 ‘러시아 버전 진주만’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가격 대비로 보면 작전 성과는 더 놀랍다. 당시 투입된 드론은 대당 가격이 1000달러 미만이다. 다해서 10만 달러 정도가 투입됐는데 러시아 공군의 피해 액수는 그 7만 배였다. 겨우 10만 달러로 무려 70억 달러를 날려버린 거다.

‘거미줄 작전’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드론이 상대방의 전략을 바꾸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공격 직후 러시아는 전략 폭격기 항공대를 동쪽 오지로 분산 재배치했다. 남은 폭격기들은 지하 격납고에 밀어 넣었으며 그 자리에 항공기 모형을 설치했다.

그러나 드론은 옛날 드론이 아니다. 첨단 AI기능이 적용된 드론에게 진짜와 가짜의 구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 러시아는 폭격기를 한곳에 모아두지 못하고 분산 배치한 것으로도 부족해 주기적으로 이를 계속 옮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군사 전문가들은 현재 드론의 발전 단계가 1차 대전 초기의 전차(탱크)와 비슷하다고 분석한다. 당시 전차는 철갑으로 총알을 겨우 막는 수준이었고 기동성은 보병의 달리기 수준에도 못 미쳤다. 구덩이에 빠지면 헤어나오지도 못했던 전차는 그러나 2차 대전에는 고속으로 주행하며 전투기와 함께 핵심 전력이 됐다.

드론의 미래 역시 상상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는 일순간에 ‘미래의 전쟁’에 던져졌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안보 전략의 전면적 수정은 불가피하다. 우리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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