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곤
조형곤

최근 글로벌 투자이민 설계·상담업체인 헨리앤파트너스가 발표한 ‘부(富)의 이동 보고서 2025’는 충격적인 숫자를 던졌다. 올해 한국을 떠날 것으로 예상되는 고액 자산가가 약 2400명,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순유출 규모라는 것이다. 2022년 400명 수준에서 6배 가까이 폭증한 수치다.

언론은 그 이유를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부담’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현상의 표면만 긁은 게으른 설명에 불과하다.

상속세율은 오래 전부터 동일하다. 최대주주 할증까지 합쳐 60%라는 높은 상속세율은 이미 알려진 구조적 문제지만, 갑자기 올해 들어 탈(脫)한국 자산가가 폭증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진 못한다. 상속세는 상수(常數)에 불과하고 거대 변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정치·사회·경제 환경에서 누적된 불확실성이다.

1987년 체제 이후 좌파 세력은 끊임없이 반시장·반기업 정책을 제도화해 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이 흐름을 한층 과격하게 만들었다. 국회 다수를 점한 민주당과 좌파 세력은 노조에 유리한 법안을 밀어붙였고, 노란봉투법·중대재해처벌법 같은 입법 폭주를 강행했다.

결국 기업 활동은 위축됐고, 기업가·자산가들 사이에서 "과연 이 나라에서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가"라는 회의감이 자리잡게 됐다. 이는 과도한 상속세와는 다른 차원이다. 사회·정치적 신뢰와 기업 투자의 예측 가능성 문제다.

지금 한국 정치의 중심은 구386 운동권과 좌파 세력, 그리고 강성 노조다. 한국 정치사는 언제나 반기업 정서가 강했지만, 지금처럼 정권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시장경제 원리를 뒤엎는 광경은 경험하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기업가·자산가의 한국 탈출은 필연이다.

외국 사례를 보면 좀더 분명해진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소득세·상속세가 없다. 미국은 법치와 시장이라는 제도가 오래 정착되어 있어서 상속도 합리적인 편이다. 부부간에는 상속세·증여세가 없다. 상속세율이 40%이지만 한화로 390억 원까지 상속세를 공제받는다. 기업 가치가 그 이상으로 평가되면 40%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재단을 만들어 기업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재단이 회사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

이탈리아·그리스·포르투갈은 정액세 제도로 고소득자를 유치하고, 스위스는 각국에 사회적 안정이라는 시장의 신뢰를 제공한다. 반면 영국·노르웨이처럼 부유세·비거주 과세를 강화한 나라에서는 자산가 유출이 늘어난다. 세율이 높고 법치가 불안한 나라에서는 자본이 빠져 나가고, 예측 가능하고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로 자본이 몰린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정치적 갈등과 후진 정치, 그리고 제도적 불확실성으로 스스로 시장의 신뢰를 깎아내렸다. 그 결과 자본의 탈(脫)한국이라는 고통스러운 청구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자본 탈출을 제어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가 정신을 억누르는 노조 기득권 구조의 해체, 제도적인 예측 가능성, 법치와 사회적 신뢰 회복이다.

고액 자산가들의 이민 급증 현상은 단순히 부자 몇 명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쟁력과 일자리, 청년의 미래가 함께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상속세가 아니라 사회정치적 신뢰와 시장의 자유 여부가 핵심 변수다. 그것을 되살리지 못하면 한국은 국제 자본 유치라는 ‘쩐의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경제는 가계·기업·정부의 3대 부채가 모두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정부 부채도 D1(국가의 외환채무)·D2(국내 채무)만 보면 낮아 보이지만 일반 외환채무와 공무원 연금 충당 부채까지 합치면 상당히 불안한 편이다.

이같은 취약한 재정 구조 속에서 자산가들의 탈한국을 막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자금 유출을 넘어 한국 경제 위기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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