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남정욱

대통령을 한 번 ‘잡아 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말씀을 세게 하셨다. 문형배 전(前)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대한민국에는 권력 서열이 있으며 직접 선출권력은 간접 선출권력보다 위에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헌법을 한 번 읽어보시라 강펀치를 날렸다.

어쨌거나 대통령도 율사 출신이니 헌법 정도는 당연히 읽어보았을 것이고 그러니까 문형배의 말을 의역하자면 "무식한 소리 집어치워라" 쯤 되겠다.

문형배만 그런 게 아니다. 성향을 종잡을 수 없는 평론가 진중권도 이 건에 대해서는 "무식해서 그런 거다" 딱 한마디로 총평했다. 우리는 지금 "무식한" 대통령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문제는 이게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니라 민주당의 ‘집단 무식’이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삼권분립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흉기로 흑화하기 십상인 까닭에 입법과 사법과 행정을 분리했다. 분리해서 담을 치고 그 안으로 서로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다. 이건 지식도 아니고 상식이다. 그리고 이 누구나 납득 가능한 이념은 정상국가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걸 민주당은 허물고 있다. 겨우 4년짜리 시한부 권력이 수백 년 유구한 전통의 정치적 합의를 폭파하겠다며 날뛰는 것이다.

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들고 나왔다. 사법부가 자기들 입맛에 맞게 ‘칼질’을 안 하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아예 자기들 내부인력으로 재판부를 꾸리고 싶지만 그래도 형식을 갖춰야겠기에 재판부를 설치하자는 이야기인데, 결국 자기들과 취향이 같은 칼잡이를 쓰겠다는 얘기다. 당연히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을 무시하는 위헌적인 발상이다.

이런 무리한 예는 230여 년 전 건국 초기 미국에서 있고 나서 처음이 아닌가 싶다. 당시 미국은 행정부와 사법부 기능이 취약했고 입법부가 제멋대로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법원을 압박해 입법부 지도 편달을 실현했고 수시로 재판에 개입해 판결을 뒤집었다. 이것이 바로잡힌 게 1787년의 헌법제정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행정부를 설치했고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했으며 입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상원과 하원을 분리해 내부 견제까지 완성했다.

이 합의가 지켜져 왔기에 미국의 민주주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무려 3세기 전에 벌어졌던 적폐를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의 무식은 대법원장 사퇴 요구로 이어진다. 이들은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해명할 수 없는 의심’에 대해 대법원장이 책임져야 한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근거는 이렇다. 대선을 한 달 여 앞둔 지난 5월 대법원이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이 그 첫 번째요, 대법원장이 헌법 수호를 핑계로 내란범 윤석열을 재판 지연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다. 여기에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전 대법원장과 국무총리가 입을 맞췄다는 음모론까지 더해져 삼박자로 기세를 올리는 중이다.

거짓말한 것을 거짓말했다고 판결한 것이 어떻게 정치적 중립 분실이며 국무총리와 만난 적이 없다는데 왜 해명할 수 없는 의심이라며 나가라고 요구하는 걸까.

답은 너무 쉽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유보된 사법 리스크를 확실하게 소거하고 싶은 거다. 후보 시절 이재명 대통령을 한 방 먹인 찜찜한 대법원장을 날리고 자기네 사람을 심은 후 다섯 개 재판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은 거다. 결과적으로 사법부 장악이다.

법리상 대법원장은 탄핵이 가능하다. 법률 위반, 직무상 중대한 업무 위반으로 국회에서 탄핵소추하면 된다. 아마 할 것이다. 힘이 있는데 왜 안 쓰겠나.

대법원장은 법은 왕권 강화를 위한 통치 수단이 아니라 백성의 삶을 향상시키는 토대라며 맞받아쳤다. 풀어 말하면 역시 "무식한 소리 하지 마라"다. 우리는 무식이 일상인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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