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 인류의 역사는 로마제국에서 시작되어 신성로마제국을 거쳐 신생로마제국에서 끝날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변수는 있다. 중국이다. 중국의 목표는 건국 100주년인 2048년까지 세계 패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동원하는 전략이 이른바 초한전(超限戰, Unrestricted Warfare)인데, 개념은 1999년 두 명의 중국인민해방군 공군 대령이 공동 저술한 군사전략 저서 ‘초한전’에서 유래한다.
중국 같은 후발 국가가 기술적으로 우수한 미국이나 유럽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지를 연구한 이 책에서는, 군사적 대립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을 제안한다. 법률전쟁·경제전쟁·사이버 전쟁·미디어를 동원한 여론전 등이 그것이다. 권력이 분산된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전략이지만 전체주의 국가라면 대단히 실용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전제가 있다. 지금부터 미국이 그 어떤 대(對)중국 세계전략을 수행하지도, 짜지도 않아야 한다. 당연히 그럴 일은 없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행보를 보면 어쩌면 중국이 꿈을 이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이 우방을 나 몰라라 홀대하며 동맹을 슬프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란 게 결국 전쟁의 역사고 전쟁의 역사는 동맹의 역사다. 기록에 남은 가장 선도적인 동맹이 페르시아에 맞선 그리스의 도시 국가 동맹이다. 육전(陸戰) 강국 스파르타와 해전 중심 아테네가 손을 잡았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그리스 동맹은 둘로 쪼개진다.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은 결국 충돌했고 이 전쟁의 기록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인류의 정치적 유산으로 남는다.
페르시아 본토로 쳐들어간 알렉산드로스 군단도 마케도니아 단독이 아닌 코린토스 동맹이었다. 아무리 알렉산드로스가 전쟁 천재라지만 한 국가의 힘만으로 거대 제국 페르시아를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궁벽한 촌구석 정권이었던 로마가 폭풍 성장한 것도 라틴 동맹의 힘이다. 주도적인 위치에 오르고도 로마는 로마 연합이라는 동맹 시스템을 유지하며 지중해 세계를 지배했다. 로마 제국 해체 이후 유럽은 분화했고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동맹을 체결하고 깨기를 반복하며 각축을 벌인다.
1차 세계 대전은 동맹국 전쟁이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미국의 나토(동맹)와 소련의 바르샤바 기구(동맹)가 세계를 양분했다. 동맹은 그러나 단순한 군사 파트너가 아니다.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동맹국에 대한 호의적인 정책 같은 정서적 파트너십도 필수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미국의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는 많이 당혹스럽다. 회의, 세미나 참석 등 활동이 제한된 비자를 가지고 한국 근로자들이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했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불법 취업이다. 그래서 체포한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미국은 한국 근로자들을 쇠사슬로 엮고 수갑을 채웠다. 곰팡이 핀 수용소와 막힌 변기로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말한 대로 일차적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과 동맹이다. 동맹국 국민들을 이렇게 야만적으로 대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은 적도, 읽은 적도 없다.
미국 정부는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미국에 남아 달라 요청했다. 비자 문제는 추후 조율하겠다는 의미였지만 한국 근로자들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귀국을 선택했다. 그 한 명의 체류 이유도 가족이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동맹을 슬프게 하면 안 된다. 더구나 한국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나라가 아니다. 섭섭함이 회의를 넘어 불신으로 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