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재명 대통령이 안보리 토의를 주재하기 10분 전, 언론 대기 구역에서 성명을 냅니다." 주UN 한국 대표부가 UN 출입 외신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안보리 회의 전 회의장 앞에서 주재자가 준비한 성명을 읽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건 의례적인 일. 한국 대표부측은 한 가지 공지를 더 냈다. "이 대통령은 순차통역과 함께 성명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화자가 몇 문장, 또는 한 단락을 말하고 멈추면 통역사가 이를 통역하는 방식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오후 2시 50분, 안보리 회의장 앞에 도착한 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한글 성명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는 통역을 담당한 한국 외교관이 미리 작성된 영문 성명서를 들고 마이크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재명은, 멈추지 않았다. 성명서를 단숨에 읽어버린 것. 잠시 당황했던 통역 담당이 영문 성명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 이재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한국 관계자들, 그리고 대통령을 찍던 카메라맨이 그 뒤를 따랐다. 성명서를 읽던 통역은 물론이고 질문을 준비했던 기자들도 민망했을 터. 그래서인지 구독자 320만의 유엔 공식 유튜브 채널은 이재명이 우리말 성명서를 읽는 장면을 편집하고 통역 담당 외교관의 성명 낭독 장면만 업로드했다.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벌어진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첫 번째 문제는 조현 장관과 위성락 안보실장, 차지훈 주UN 대사 등등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이재명을 제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성명서를 다 읽은 건 그렇다쳐도, 기자들이 기다리는 와중에 먼저 들어가는 걸 막기는커녕 같이 따라들어가 버린 건, 이준석 의원의 말대로 "직언해 줄 인사는 없고 옆에서 심기 경호를 할 사람들밖에 없는 것 아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게 이재명식 인사의 예견된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 1주 전 기사를 보자. "외교무대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고시 동기라는 점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차지훈 신임 주유엔대사가 미국 뉴욕에 있는 UN 본부에 정식 부임했다. 차 대사는…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활동을 했고,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였던 2020년에는 공직선거법 위반 변호인단에 참가해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이끌기도 했다."
외교란 의전, 즉 보여주는 게 중요한 분야, 그런데 이 자리에 전문성보다 친분을 중시한 인사를 했으니, 이런 참사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윤 전 대통령 시절이었으면 ‘국제적 망신’ ‘탄핵’이란 구호가 전국에 울려퍼졌을 터, 하지만 세상은 너무도 조용했다. 왜? 저 먼 뉴욕에서 열리는 행사다 보니 언론을 통해 진위를 파악할 수밖에 없는데, 물어뜯는 면에서는 세계 제일이라 할 우리나라 좌파언론이 이재명에게 불리한 이번 이슈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다.
예컨대 ‘바이든 날리면’의 일등 공신인 MBC가 이번 일을 어떻게 보도했나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안내가 뜬다. "‘이재명‘ ’순차통역‘ ’안보리‘ ’MBC’에 대한 검색결과가 없습니다." 그 대신 MBC는 며칠 전 대통령이 UN 총회에서 연설 후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현장 영상을 보면 연설 전 다들 자리를 빠져나가, 행사장이 썰렁했는데 말이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여론조사가 만들어진다. "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긍정 평가 이유로는 ‘외교’가 2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어 경제·민생(15%), 소통(9%), 전반적으로 잘한다(8%) 순으로 나타났다."
자, 이렇게 우리끼리만 물고 빨고 있으면 괜찮은 걸까? 지금 우리 경제에 제일 중요한 이슈는 관세, 하지만 우리 국민 대부분은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이 대통령은 분·명·히 "기대 이상"이라 했고, 강유정 대변인은 "합의문이 필요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이라 말했다.
하지만 9월 18일 타임지 보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측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탄핵을 당했을 것"이란다. 일본과 달리 우리 자동차 관세는 25%, 여기에 주가 폭락과 환율폭등까지 닥친 걸 보면, 장차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진다. 그런데도 국회와 언론은 대통령 지키기에 여념이 없고, 모자란 국민은 이재명 만세를 외친다. 과거 유행했던 질문을 리바이벌해본다. 이게, 나라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