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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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다른 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위대한 경제이론이 무려 세 개나 있다.

첫째가 ‘호텔경제론’, 한 외지인이 한적한 마을에 호텔 예약금으로 10만 원을 내면서 마법 같은 일이 연쇄적으로 생긴다는 내용이다. 호텔 주인이 그 10만 원으로 가구를 사고, 가구점 주인이 10만 원어치 치킨을 시키며, 치킨집 주인은 문구류를 10만 원어치 산다. 화룡점정은 바로 다음 구절, 문구점 주인이 그 10만 원으로 호텔에서 진 빚을 청산하는데, 그 외지인이 호텔 예약을 취소해 버린다!

그 학설의 주인공은 이걸 이렇게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마을에 들어온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돈이 한 바퀴 돌면서 마을 상권에 활기가 돕니다. 이것이 바로 경제 활성화입니다."

호텔 주인만 10만 원을 뜯겼지만, 그냥 넘어가자. 중요한 건 경제 활성화니까.

두 번째는 ‘커피경제학’, 닭집이 줄줄이 늘어선 경기도 계곡을 시찰하신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일갈하신 게 이 이론의 시작이었다. ‘5만 원 받고 땀 뻘뻘 흘리며 한 시간 동안 닭을 고아서 팔아봐야 3만 원밖에 안 남지 않냐? 그런데 커피는 원가가 120원에 불과한데 한 잔에 8천 원에서 1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세상에, 이렇게 쉬운 돈벌이가 있다니! 이 학설의 주창자가 대통령까지 되면서, 커피경제학은 주류가 된다.

마지막으로 ‘원화 기축통화론’, 한 토론회에서 나라 빚이 쟁점이 됐을 때 그분이 주장하신 건데, 그분 말씀이 다 그런 것처럼 토론이 끝난 뒤 좌파들이 일제히 나서서 ‘원화가 기축통화 못될 이유가 뭐냐?’고 우기는 바람에 ‘이론’으로 정착된 경우다. 그 주창자가 대통령이 되셨으니,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세 개의 이론을 한 분이 만드셨다는 것,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이다. 기존 이론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 경제학에서 새 이론을 3개나 정립한 비결이 뭘까? 제대로 된 스승의 존재가 이유일 듯싶다.

그의 경제 책사인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통화량 100배론’의 창시자, "한은이 돈을 마구 찍어서 물가가 100배 상승했다고 하면 돈 100억 원 가진 사람은 돈의 실질 가치가 1억 원으로 줄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피해가 없다"는 내용이다. 그밖에도 최배근은 "긴급재난지원금은 한 번이 아니라 최소 서너 번은 더 줘야 한다"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했고, 좌파정부 때 나라 빚이 급속히 늘어났을 때는 ‘좋은 채무론’으로 민주당에게 반박의 근거를 제시해줬다.

그가 민주당 대선캠프에 합류했을 때 이재명 당시 후보가 "천군만마와 같은 큰 선물"이라며 좋아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 세계적 경제이론가 둘의 만남은 상상만으로 가슴이 벅차긴 하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또다시 새로운 경제이론을 시도했다. 지난 국무회의 때 ‘고신용자는 낮은 이자로 고액을 장기간 빌릴 수 있지만, 저신용자는 고리로 소액, 그것도 단기로만 빌릴 수 있는 현실’을 보고받은 그는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 영역 같다" "돈이 필요 없는 고신용자들에게 아주 싸게 돈을 빌려주니 그것으로 부동산 투기한다"며 분노한다.

그래서 그가 내놓은 정책은 "못사는 사람에게 ‘넌 능력 없으니 이자도 많이 내라’고 할 게 아니라 공동 부담을 하자"는 것이다. 대통령 업무가 고되서 총기가 흐트러진 것인지, 이번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 이가 더 많다.

대통령은 ‘고신용자=돈 많은 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고신용자는 돈을 빌린 후 성실하게 갚은 사람일 뿐이다. 또한 신용이 낮다고 가난한 것도 아닌 것이,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재산이 25억인데도 세금과 과태료를 상습적으로 안 냈지 않은가? 그런데도 성실히 빚을 갚아온 이가 저신용자를 위해 이자를 더 부담하라니, 이걸 어떻게 납득하겠는가?

이런 식이면 교통사고 많이 내는 운전자가 보험료를 많이 내니 덜 내는 운전자가 공동부담하자는 것도 가능할 테고, 전과 많은 이가 형량을 더 세게 받으니, 감방 안가는 이들이 형량을 나눠서 부담하자는 정책이 나올 수도 있겠다. 이번에 좀 아쉽긴 했지만, 난 경제대가로서 이재명을 여전히 신뢰한다. 다음번엔 호텔경제학에 걸맞은 멋진 이론을 만들어주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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