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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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2심 판사가 온갖 궤변을 동원해 무죄를 선고했을 때, 대법관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허위사실을 유포해 재판에 넘겨진 이가 1심 법원의 태업과 윤 전 대통령의 자충수로 인해 차기 대선에 또다시 출마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법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음 두 가지였다. 대법원 선고를 대선 이후로 연기해 버리는 것과 대선 이전에 선고를 내리는 것, 대법원의 선택은 후자였다. 1심과 2심이 상반된 결론을 내려 유권자들이 헷갈리는 상황에서 어떤 판결이 맞는지 말해주는 것이 최상급 법원의 의무라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파기자판으로 아예 형을 확정해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재명의 당선 여부를 유권자의 판단에 맡기는 게 더 합리적으로 보였을 터. 결국 대법관 12명 중 10명이 이 안에 찬성함으로써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이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은 ‘허위사실 유포자’가 무능한 보수보다 더 낫다고 여겼기에 이재명에게 몰표를 던졌고, 그는 대통령이 됐다. 여기에 무슨 절차적 문제가 있는가? 없다. 오히려 이런 일련의 상황은 대한민국에서 3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문제는 대한민국 좌파의 좀스러움이었다. 북한과 중국만 예외로 둘 뿐, 자신에게 불이익을 준 이에겐 반드시 복수한다는 소신을 가진 좌파들이 대법원장을 쫓아내기 위해 치졸한 공작을 벌였으니 말이다. 이후 벌어진 일들을 개인적인 추측을 얹어 정리해 본다.

1단계, 사전작업.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 뒤 일을 벌이면 보복하는 티가 너무 나니, 대선 전에 미리 건더기를 만들어둬야 한다. 그래야 ‘보복이 아니라, 의혹이 있어서 사퇴시키는 거다’라고 할 수 있잖은가?

밑밥을 깐 곳은 극좌 유튜브 채널인 열린공감 TV, 그들은 5월 초 방송에서 ‘지난 4월에 한덕수와 조희대 등이 만나 대법원에서 이재명을 처리하겠다고 했다’는 녹취파일을 틀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이의 증언이 아닌, 제3자의 일방적 주장이었고, 그나마도 AI로 만든 파일이었음에도 민주당 서영교는 다음날 국회에서 이 파일의 존재를 언급한다. 이후 극좌 유튜브의 찌라시가 좌파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갔음은 물론이다.

2단계, 공격 개시. 대선 이후 3개월이 지나 대통령의 권력이 안정화되자, 좌파들은 대법원장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포문을 연 것은 이번에도 극좌 유튜브 채널, 9월 15일 김어준 방송은 "둘이 만났다면 그 자체로 부적절한 일"이라며 운을 띄운다. 민주당 부승찬은 다음날 국회 대정부질문 때 총리에게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법원장 스스로 대선판에 뛰어든 희대의 사건"이라고 했고, 이를 계기로 정청래·추미애·서영교·전현희 등등 민주당의 우기기 대마왕들이 각종 방송과 SNS를 통해 이를 확대재생산한다.

중요한 것은 우아함을 잃지 않는 것, 그래서 민주당 대변인은 ‘개인 의견일 뿐 당과는 무관하다’며 자신도 믿지 않을 논평을 냈고,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통령실도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가 취소하는 촌극을 벌인다.

3단계, 반격 잠재우기. 한덕수 전 총리와 조희대 대법원장이 ‘만난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하자, 당대표 정청래는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억울하면 특검에 출석해 수사받아라"고 하고, 전현희는 방송에 나와 "대법원장의 답변이 궁색하고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하면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제대로 된 증거를 내놓는 게 상식이지만, 좌파들은 의혹을 기정사실화하며 사퇴를 요구하는 중이다.

역대 대법원장 가운데 정치권의 압력으로 중도 퇴진한 경우는 없었다. 88년과 93년 대법원장이 임기를 못채우긴 했지만, 그건 그들의 비리로 인해 사법부 내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난 결과일 뿐, 지금처럼 집권여당이 총대를 메고 대법원장을 내쫓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가장 비겁한 자는 대통령이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3권분립이 처절하게 부서지는 와중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잖은가? 대통령실도 공감한다는 대변인의 말을 취소할 정성이라면 미쳐 날뛰는 민주당을 향해 한마디 할 법도 하건만, 대통령은 그저 관망만 할뿐이다. 대통령에게 질문 하나, "대통령님, 헌법 위반은 탄핵사유인 거 혹시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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