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
김정식

지난 13일 ‘김건희 특검’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표면상 명분은 ‘통일교 신도 대거 입당 의혹’ 규명이다. 그러나 실질적 목표가 당원명부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수사 절차를 넘어 금기를 깨는 전례로 남게 됐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은 권력에 맞서는 자율적 조직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 내부 자료는 국가권력의 임의적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실제로 민주당은 자신들에 대한 당사 압수수색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정치 탄압’이라 규정하며 온몸으로 막아왔다. 그만큼 정당 내부 자료의 유출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특히 정당의 당원명부는 선거 전략, 내부 결속에 더해 당원 보호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비공개로 지켜져야 한다. 당원명부에는 이름·주소·연락처는 물론이고, 그 자체로 한 개인이 어떤 정치적 결사에 참여해 왔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단순한 개인정보가 아니라 ‘정치적 신념’ 자체를 드러내는 민감정보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자유와 결사의 권리 그 자체인 것이다.

이 명부를 사정기관이 통째로 확보한다는 것은, 특정 세력의 이해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정치 성향을 추적하고, 표적 사찰과 사회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야당의 당원명부를 사정기관이 확보하면, 정치적 판단이 행정 전반에 투영될 수 있다. 정부와 연계된 사업체나 연예인, 심지어 공무원·공공기관 종사자의 가족까지 ‘정권과 다른 정치 성향’이라는 낙인을 우려해야 하는 사회가 된다. 이는 곧 ‘정치적 자기검열’로 이어지고, 자유민주주의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이번 압수수색이 설령 법원의 영장을 거쳤다 하더라도, 이는 명백히 상위법인 헌법과 국제 인권 규범이 요구하는 ‘정치적 자유 보장’이라는 대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체포하려던 공수처 역시 ‘불법적인 영장’을 가지고도 법적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러한 기형적인 법 집행은 곧 권력 집행으로 전락할 수 있기에, 영장이 사법적·정치적 정당성을 보장할 수 없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사건은 결코 일회성으로 볼 수 없다. 이렇게 무너진 시스템 위에서 지금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당하는 일들은 언제든 민주당뿐 아니라 다른 정치 세력의 몫이 될 수도 있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권력이 만든 잘못된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는 4류’라던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은 현재도 유효해 보인다. 이미 대한민국 전체를 접수한 듯한 저들의 위세를 보면 절망감이 들 때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낼 수 있다는 믿음과 굴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용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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