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
정기수

40년 묵은 ‘87체제’ 헌법은 전두환 5공화국에 의해 만들어진 대한민국 통치 구조 틀을 담고 있다. 그 핵심은 5년 단임이다. 쿠데타 정권이 국민 무마용으로 내세웠던 것을 노태우 6공화국에 이어 김영삼~윤석열에 이르기까지 문민정부도 똑같이 그 족쇄를 차고 재임을 하도록 했다.

그 족쇄가 일으킨 갈등과 위기를 푸는 해법으로 개헌 주장이 연례 행사로 나왔다. 87체제 졸업이 이유다. 선거 때만 되면 제기됐다가 곧 사그라졌던 거품이 이번만큼은 터지지 않고 결실을 거둘 수 있을까?

예측은 반반, 이번에도 안 될 것이라는 체념과 이번에는 상황이 무르익었고 불가피할 것이라는 희망이 공존한다. 그 희망은 개헌 절대 필요성을 설파하는 잠룡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라는 데서 온다.

수면 밑 잠룡이 아니라 수면 위로 솟구쳐, 곧 용이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이재명만 응하지 않고 있다. 대권이 눈앞에 있으니 자기 입으로 임기 단축이나 권력 제한 같은 손해나는 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에게 숙명인 사법 리스크 딱지, 이걸 오래오래 떼어 놓았다가 어느 순간 아예 떨쳐내 버리려면 대통령 권한이 더 강했으면 강했지 약해지면 안 된다. 임기도 더 오래 해야 명을 늘릴 수 있으므로 자진해서 단축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리 없다.

이 사람을 고립시킬 수 있는 카드가 임기 3년-4년 중임-권력 분산 개헌론이다.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은 3년 후 2028년, 국회의원 총선과 함께 다시 대선을 치러 재신임을 받도록 하자는 안이다.

조기 대선이 이뤄져 TV 토론을 하게 되면 사면초가 이재명의 방어 논리가 매우 궁색해질 것이다. 결국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번 개헌 각론은 복잡하지 않다. 시간과 비용도 얼마 안 든다. 대선 투표와 동시에 개헌 찬반 국민투표를 하면 된다.

때마침 대통령이 탄핵 재판 최후 진술에서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과 정치 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여권은 국면 전환 어젠다를 받았다. 이재명 고립과 정권 재창출 용도다.

87체제 극복은 대선과 총선 시기기 5년-4년으로 엇박자가 남에 따라 여소야대가 자주 발생, 국정 혼란과 낭비가 많아서 우선 필요하다.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의회를 낳는 산실이라는 치명적 문제점도 있다. 권력 분산과 책임총리제 실현 등이 대안이다.

이원집정부제라든지 의원내각제는 여야 합의가 어려워 논의 자체를 않는 편이 좋다. 잘못하면 너무 무겁고 복잡한 제도 바꾸는 문제로 시간만 허비하고 이번에도 또 개헌이 물거품이 되고 말 수 있다.

내치 권력을 총리와 지자체장들에게 일부 넘겨주는 건 좋다. 의회 권력도 똑같이 대폭 조정해야만 한다. 탄핵을 30번 가까이 남발하고(인용돼 파면된 장관·기관장이 한 명도 없다), 국가 중요 업무 예산을 0원으로 깎아 버리는 무소불위 패악질 방지 장치가 필요하다.

국회의원 수도 이참에 최소 50명, 많게는 100명 줄여야 한다. 야당이 반대한다면 중도층 대선 표를 상당 부분 잃게 될 것이므로 찬성할 수밖에 없다. 개헌 논의가 이뤄지고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면 이번이야말로 정치 개혁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의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여당과 야당 비명계 숙청을 위한 개딸들의 도구’가 되는 게 아니다. 권성동이 잘못 짚었다. 역으로 민주당의 막말, 비리, 선동꾼 금배지들을 청소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도구로 쓸 수 있다. 이재명의 자살골이 될 수 있다.

그가 국회 연설에서 제안한 것이니 통과될 가능성이 많다. 여당은 이걸 받아 개헌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 나라에 드디어 정치 개혁의 봄이 온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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