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오
권태오

며칠 전 서울 근교 식당을 찾아갔을 때 이야기다. 반갑게 일행을 맞아 자리를 안내해 준 아주머니가 대뜸 "아니 무슨 장군들이 그래. 요즘 장군들은 장군도 아냐. TV에 나와서 눈물이나 질질 짜고. 그게 무슨 장군이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예비역 장군임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농담이었지만 불쾌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계엄의 시간에 그 위치에 있었다면 누구라도 그들처럼 처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군에서 명령은 절대 복종을 수반한 것이다.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할 예하 지휘관이 하달된 명령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금지된 일이다. 항간에 잘못된 명령은 거부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들이 나오는데, 그런 것은 명령이 아니고 강제라고 말해야 한다. 명령에는 잘못된 명령이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평생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 온 지휘관들을 상대로 모욕을 주며 희화화하고 있다. TV에서는 연일 눈물 흘리는 장군, 수갑 찬 장군이 방영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나이 어린 의원이 대놓고 "사령관씩이나 되어서…"라며 모욕을 주고 있다. 실형을 받을 시 연금도 반밖에 못받는다며 이들을 겁박하고 있는 상황은 기가 막히다. 군의 생명인 계급과 명령에 대한 권위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런 혼돈의 상황이 이어지니 우리 국군 지휘관들은 내심 막막하고 허탈한 심정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군은 변함없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만 한다. 지휘관을 신뢰하고 존경하며, 명령에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대의 생명도 절대 훼손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손자(孫子)가 말한 장수의 자질 이야기가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지휘관들에게 힘과 의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손자는 장수는 모름지기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 지혜(智)란 단순한 지식의 차원을 넘어 상황을 직시할 줄 아는 직관력과 현명함, 건전한 의사결정 능력을 가져야 함이다. 지식만 있고 지혜롭지 않은 자는 자신의 뜻이 꺾일 경우 쉽게 좌절하기 때문이다. 둘째, 신뢰(信)는 상하가 상대의 말과 행동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함을 말한다. 생사가 걸린 교전 상황에서는 일일이 상급자에게 묻고 결정을 받아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늦고 급박한 일들이 많다. 그렇기에 믿음이 없으면 오해가 생기고 결국 부대는 분열된다.

셋째, 인의(仁)를 강조했다. 이는 인간의 천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장수는 사악하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어질며 베풀 줄 아는 심성이어야 함을 말한다. 만일 장수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버리면 그가 지휘하는 부대는 도적떼가 되고 만다.

넷째, 용맹(勇)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군인의 자질 중 기본이기도 하지만 지나쳐서도 안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손자에 버금가는 병법가인 오자(吳子)는 "사람들이 장수를 논할 때 흔히 용맹성만을 보는데 용장은 경솔하게 적과 싸우려고만 하기 때문에 훌륭한 장수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소위 무모한 자는 중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섯째, 장수는 엄격(嚴)해야 한다고 했다. 조직관리 기법에는 상벌(賞罰)이 있는데 이것이 엄격하고 공정하지 않으면 군대는 기강이 무너지고 눈치와 줄서기가 만연하는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만다.

지금 정치적 혼란기에 국군과 국민을 갈라놓고 군대의 생명인 질서와 규율, 명령 체계를 무너뜨리려는 황당한 도전들이 횡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휘관들은 이런 상황에 의연하길 바란다. 오히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되짚어 보고 흔들릴 수 있는 군의 기본을 더욱 단단히 잡아 나가길 기대한다. 국민은 항상 여러분과 함께했고 끊임없는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있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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