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공우주국(NASA)이 지구에서 1억6000만㎞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항공사고를 조사하고 있다. 올해 1월 착륙 과정에서 로터(회전 날개)가 손상되며 화성에 잠든 헬리콥터형 드론 ‘인저뉴어티(Ingenuity)’가 그 대상이다. 인저뉴어티는 지구 밖 행성에서 동력 비행에 성공한 최초의 비행체로, 이번 조사는 외계에서 발생한 항공사고의 원인을 밝히려는 첫 시도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는 최근 화성 탐사 드론 인저뉴어티의 마지막 비행에 대해 상세 분석을 진행 중이며, 수주일 내 정식 기술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JPL과 에어로바이런먼트가 공동 개발한 인저뉴어티는 올 1월 18일 72번째 비행을 마치고 착륙하는 과정에서 로터에 치명적 손상을 입으면서 작동 불능에 빠져 NASA가 임무 종료를 선언했었다.
당시 NASA는 입지전적 성과를 낸 인저뉴어티의 예상치 못한 사고에 큰 안타까움을 전한 바 있다. 사실 인저뉴어티는 외계행성 드론 탐사의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개발된 일종의 테스트 버전이다. 중량 1.8㎏, 높이 49㎝의 이 드론의 당초 비행 목표는 30일간 최대 5회에 불과했다. 대기 밀도가 지구의 1%에 불과해 양력을 얻기 힘든 화성에서 첫 시도만에 이 정도면 굼벵이 같은 로버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던 화성 탐사의 판도를 바꿀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인저뉴어티는 2021년 4월 19일 처녀비행 성공 후 3년간 무려 72회의 비행을 완수했다. 누적 비행시간은 128.8분으로, 목표를 14배 이상 초과 달성했다. 이 과정에서 3번의 비상착륙과 혹독한 화성의 겨울도 이겨냈다. 심지어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날씨와 항공전자 테스트 데이터를 전송 중이다.
NASA가 인저뉴어티 사고를 면밀히 조사해 보고서로 남기려는 것은 비단 절차 때문이 아니다. 이 연구 결과는 향후 화성은 물론 다른 행성에 파견할 드론의 설계와 운용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오는 2027년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향해 발사될 총중량 약 450㎏의 대형 드론 ‘드래곤플라이(Dragonfly)’도 그중 하나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NASA는 72번째 비행 6일 뒤 내비게이션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에서 로터의 심각한 손상을 포착했다. 5주 뒤에는 화성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를 보내 로터가 부러진 채 바닥에 처박힌 드론 잔해도 확인했다.
하지만 1.6억㎞나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사고를 조사한다는 건 천하의 NASA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인저뉴어티의 수석 파일럿인 JPL 호바드 그린 박사는 "그곳엔 블랙박스도 목격자도 없고 활용 가능한 데이터는 매우 한정적"이라는 말로 그 어려움을 설명했다.
초기 조사에 의하면 데이터 부족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린 박사는 "주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러 시나리오가 가능하지만 가장 신빙성 높은 것은 정보 부족"이라며 "항법장치가 착륙 궤적을 정확히 산출할 만큼 착륙지점의 표면 정보가 충분치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인저뉴어티의 내비게이션 카메라는 지면을 촬영하는 카메라 1대로 표면 특징을 파악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이 제한된 능력은 처음 계획했던 평평한 지형에서의 5차례 이착륙에는 충분했지만 임무가 추가될수록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72번째 비행의 착륙지가 가파르지만 큰 특징이 없고, 모래 물결로 가득한 곳이었다는 게 이러한 판단의 근거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인저뉴어티는 지면 정보 오류로 착륙 속도가 너무 빠르게 설정됐고 지면과 강하게 충돌했다. 이후 중심을 잃고 휘청이면서 로터 4개 모두가 가장 약한 지점에서 부러졌으며, 이것이 로터시스템의 과부하(진동)로 이어져 로터 1개는 아예 뜯겨 나갔다.
인저뉴어티 미션의 책임자인 JPL의 테디 차네토스 박사는 "인저뉴어티를 통해 우리는 화성이라는 가혹한 환경에서 운용할 자산이 반드시 크고, 무겁고, 강력한 방사선 차폐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됐고 많은 데이터와 자신감을 갖게 했다"며 "곧 나올 사고조사 보고서는 더 다양한 드론들이 외걔행성을 비행하며 우주의 많은 비밀에 다가서게 해줄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NASA는 지난 11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지구물리학회 연례회의에서 인저뉴어티의 후속모델인 ‘마스 초퍼(Mars Chopper)’ 콘셉트를 공개했다. 이 드론은 인저뉴어티보다 20배 무겁고, 수㎏의 과학장비를 탑재할 수 있으며, 하루 최대 3㎞를 자율비행하면서 탐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