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현타’는 오지 않았다. 현타가 무엇이냐. ‘현실 자각 타임’을 줄인 말이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은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아버지 이재명’의 시간이 왔다. 찬바람이 불기시작하면 아버지의 죄를 묻기 위한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며, 그와 함께 현타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했다. 리스크라 불리던 막연한 미래의 불확실성이 현실이 되고나면, 비로소 그동안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환상이 박살나고 초라한 민낯이 드러날 것이었다. 그들이 뒷목을 잡으며 현실을 자각할 타임이 마침내 그렇게 올 것이라 예상했다.
첫 번째 재판은 현타의 예상이 적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버지의 죄가 엄중하다는 판결이 나왔고 아버지와 그 자식들은 당황했다.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한 통쾌한 순간이었다. 묵은 체증이 순식간에 씻겨 내려가는 사이다 판결이라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두 번째 재판도 그럴 줄 알았다. 유죄 판결이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위증교사죄가 이미 소명됐다는 판사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응당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반대 판결이 나왔다. 위증한 자는 유죄인데, 위증을 교사한 자는 무죄라고 했다.
무죄 판결이 나오자 아버지를 영접하기 위해 법원에 나와 있던 자들이 환호했다. 눈물을 흘리고 부둥켜안으며 감격했다. 정의가 살아났다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정의로운 판결에 감사하다고 했다.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아버지의 무죄를 외쳤던 사람들도 신이 났다.
두 번째 재판에서 다시 유죄를 받았으면, 어쩌면 현타가 왔을 수도 있다. 미몽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처한 진짜 몰골을 여지없이 깨닫게 되는 시간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무리 낯이 두꺼운 자들이라 해도 그쯤 되면 뭔가 깨달음 같은 것이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판사는 그들에게 현타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현타의 축복을 다음으로 미뤄 버렸다. 현타는 곧 회개다. 지은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현타의 기회가 날아가는 바람에 회개할 기회도 사라져 버렸다. 있는 죄를 없다고 해 버린 탓에 현타도 사라지고 회개할 이유도 증발해 버렸다.
아버지는 첫 재판에서 유죄 선고가 떨어지자 자신은 죽지 않으며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미래도 죽지 않는다고 했었다. 두 번째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자 진실과 정의를 되찾아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후에 ‘감사드린다고 했더니 진짜 감사드린 줄 알더라’며 말을 바꿀 가능성이 매우 크다. 판결 내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말도 달라질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했던 인물이다. 그가 말 바꾸기의 천재란 사실은 천하가 다 안다.
그는 죽이는 정치 말고 살리는 정치를 하자고 했다. 지당한 말씀이지만 뭔가 괴이하고 수상쩍다. 팔뚝에 ‘착하게 살자’는 문신을 새기고 패악을 일삼는 조폭처럼 부자연스럽고 섬뜩하다. 그의 곁에서 수고한 자들이 줄줄이 세상을 떠났고, 이유도 모른 채 정신병원에 끌려간 자들도 수두룩하다. 그의 모진 말에 영혼이 피폐해진 사람들도 많다.
분명한 것은 심판의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판결문이 하나씩 낭독될 때마다 진실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증명될 것이다. 깃발 앞세우고 피켓 들고 정권 심판 외쳐봤자, 바다에 좁쌀 던지기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오듯 현타의 시간도 오고야 만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