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는 중국 땅인가. 현재의 국경선으로 따질 때 중국 영토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와 발해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역사인가. 이 물음에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은 당연히 우리 역사라고 여기지만, 중국 학계에선 중화민족의 일원인 중국 내 소수민족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중국 땅에서 벌어진 일들은 모두 중국 역사’라는 것이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한동안 잠잠해 보이던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 대학생용 교재 <중화민족 공동체 개론>에 "(당나라 시기) 동북방에 있는 고구려, 발해 등 변방 정권이 연속해 있었다"며 "그들은 모두 한문·한자를 썼고 역대 중앙(중국) 왕조의 책봉을 받았다"는 내용이 수록된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당국은 이달 들어 ‘개론’ 내용을 일반 대중에 공개하는 온라인 시리즈 강좌도 개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홈페이지에 10여 개 강의를 올리기도 했다.
한문·한자를 쓴 건 고려·조선 등 한반도 정권은 물론 일본까지 자기네 영토라는 말에 다름없다. 책봉을 받았다고 자기네 영토라는 내용도 당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성격을 깡그리 무시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려·조선도 중국 영토였다는 것인가.
개론은 고려 태조 왕건이 918년 고려를 건국하면서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선언한 것도 무시하고, 고려와 고구려·발해는 계승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런 주장과 달리 중국 정사(政史)인 <송사>(宋史)에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서술돼 있다. 993년 고려를 침공한 거란 장수 소손녕에게 서희가 고려의 고구려 계승 의식을 명확하게 설명한 내용이다.
양국의 역사관이 공개적으로 충돌한 것은 2002~2007년 중국 정부에 의해 수행된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 줄여서 동북공정 때문이었다. 이는 만주 등 중국 동북 지역의 역사를 한족과 연결시켜 중화민족의 역사로 만드는 역사 수정 작업이었다. 이를테면 "고구려는 오랫동안 중국 중앙 황조에 예속되었고 고구려인의 후예 절대다수가 중국 각 민족에 퍼져 있다"(쑨진지·孫進己)는 주장 등이다.
사실 이런 역사 논쟁은 뿌리가 제법 깊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제국주의 일본이 1932년 만주국을 세우면서 역사적 정통성을 다지는 작업에 들어갔다. 과거 만주에서 생활한 만주족과 몽골족 등의 종족적, 역사적 유대가 일본과 (당시엔 일본 땅이었던) 조선에 가까웠고 한족은 외지에서 건너온 침략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항해 중국 민족주의 학자들이 고구려 등의 역사를 한족 또는 중화민족과 연결시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은 1949년 공산당 정권 성립 이후에도 이어졌다. 중국 사회과학원 초대 원장인 후차오무(胡喬木)는 고구려가 동북 지방을 점유했다거나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고구려인이라는 내용을 "반동적인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시작된 것이 동북공정이었다. 다민족국가인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지향하면서 ‘중국인=중화민족’이란 단일민족 이념을 내세우려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소수민족의 독립 움직임을 원천 봉쇄하려는 집안 단속인 셈이었다.
동북공정은 2007년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한국이 고구려연구재단을 출범하는 등 주변국과의 마찰이 표면화됐기 때문이다. 대신 중국 사회과학원과 지린(吉林)성 사회과학원에서 추진하는 고구려·발해 관련 학술 활동은 양적·질적으로 더 풍부해지고 있다.
이런 학술적 토대를 바탕으로 중국 정부는 교육 정책을 통해 어린 세대에게 고구려·발해가 당연히 중국 역사라고 인식시키고 있다. 하지만 궁금하다. 수나라가 고구려 원정에 매번 실패해 멸망했고, 중국 역사상 최고 명군 중 하나로 추앙받는 당 태종이 끝내 고구려를 무너뜨리지 못한 역사도 가르치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