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형
이충형

"반세기 만에 미국이 해상에서 패배(defeat at sea)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의 해군력이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며 이렇게 분석했다. 미 국방부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중국 군사력 평가 보고서’는 중국 해군이 현재 세계 최대 규모 함정을 보유하고 있고, 2030년엔 보유량이 더 늘어 미국과의 격차가 커진다고 예상했다. 2020년 군함 수에서 미국을 추월한 중국 해군은 이제 항공모함과 핵추진 잠수함 등 첨단 군함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어 질적 차이도 좁히고 있다.

지난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며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선박 건조 능력"을 협력 희망 분야로 지목했다. 그 배경엔 이대로라면 중국에 해군력을 추월당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미국의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미국이 100년 전 해군력의 쇠약과 더불어 국력이 쇠약해진 영국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 해군 중흥에 힘쓰기 시작한 건 덩샤오핑 시절 지금도 ’중국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류화칭(劉華淸) 제독부터다. 그는 1982년 도련선(島련線)이라는 대미(對美) 해상 방위선을 설정했다. ‘섬(島)을 사슬(련)처럼 연결한 선(線)’이라는 뜻이다. 제1도련선은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제2도련선은 오가사와라 제도-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를 잇는다. 도련선의 설정은 동아시아 해역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이후 2012년 시진핑 주석이 집권하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해군 규모는 가파르게 팽창했다. 1999년 이후 증강된 중국 해군력의 70% 이상이 시진핑 1·2기(2012~2022년) 때였다. 중국 지도부는 2012년 18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해군 강화, 해외 군사기지 확보를 목표로 하는 ‘해양 강국’ 건설을 국가 발전 전략으로 채택했다.

같은 시기에 중국 해군 전략은 ‘방어’에서 ‘확장’으로 기조가 바뀌었다. ‘제1도련선’ 안에서 적을 방어하는 ‘근해(近海) 방어 전략’이 그 너머로 해군력을 확장하는 ‘원해(遠海) 호위 전략’으로 진화했다. 중국 해군이 ‘제1도련선’ 밖으로 나아가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은 2차 대전 이후 태평양을 장악해온 미 해군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뜻이다.

중국이 미국의 해군력에 가장 눈에 띄게 따라붙는 분야는 함정 숫자다. 저명한 군사 싱크탱크인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와 미 국방부에 따르면 국가별 함정 수는 2000년까지만 해도 미국 318척, 중국 110척으로 미국이 압도적으로 앞섰지만 2020년엔 미국 293척, 중국 350척으로 앞질렀고 지난해는 미국 297척, 중국 370척으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큰 변수가 없다면 2030년엔 중국 함정 수가 435척으로 미국(304척)을 크게 앞서리라는 전망이다.

중국 해군은 미 해군의 ‘기술의 벽’은 아직 넘지 못하고 있다. 대양 해군의 상징인 항공모함 전단(戰團)의 규모와 작전 능력은 중국이 미국에 많이 뒤처진다. 2030년까지 중국의 항모는 미국(11척)의 절반인 6척에 불과할 전망이다. 미국이 원양을 항해할 수 있는 핵 엔진의 항모라면 중국 항모는 아직 석유를 보급해야 하는 디젤 엔진이다. 배수량이 큰 구축함이나 순양함 등 위력적인 전투함의 보유량도 미 해군이 압도적으로 많다.

문제는 중국의 조선(造船) 능력이 미국을 압도적으로 앞서, 미국이 현상 유지에만 머물 경우 중국이 양과 질 모두에서 미국을 앞설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조선소는 현재 일곱 곳에 불과한 반면 중국은 수십 곳에 달한다. 지난해 7월 유출된 미 해군정보국 문서에 따르면 중국의 연간 선박 생산 역량이 2325만GT(총톤수)로 미국의 최소 232배라고 평가됐다.

중국의 해군력이 미국을 빠르게 따라잡자 미국이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한국은 기술력과 제조 시설을 모두 제공할 수 있고 조선업 공급망 생태계가 넓고 튼튼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컨테이너선·LNG 운반선 등 상선뿐 아니라 수상함·잠수함 등 군함까지 모두 공급할 수 있다. 중국의 대양해군 전략이 한국 K-조선에 기회의 문을 넓히고 있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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