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창간 3주년 특별 기고]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박사
남 앵커: 야당 대표든, 대통령 부인이든, 범죄혐의가 있어서 처벌받아야 한다며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일, 즉 기소는 검사만 할 수 있습니다. 기소는 검사만 하고, 그 틀 안에서 판결을 법관이 하죠. 그러나 평범한 국민도 할 수 있는 게 있으니, 세상사를 지켜보며 선택을 합니다.
여 앵커: 금요일 뉴스데스크 마칩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11월 15일,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나름 비장한 클로징멘트를 했다. 정치검찰이 공정하지 않은 기소를 해서 이재명이 유죄를 선고받았으니, 이제 국민이 나서서 이 정권을 타도해야 한다, 뭐 이런 뜻인 것 같다. 그래도 판사가 중형을 내렸으니 이재명의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얘기건만, 명색이 공영방송이라는 것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기는커녕 저따위 편파적인 멘트를 하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
더 놀라운 일은, 민주당 인사나 할 법한 저 클로징 멘트가 별반 화제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MBC가 MBC 했는데 뭐 이상할 거 있냐’는 세간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리라. 내친김에 MBC는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재판 다음날인 16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3차 국민행동의 날’이란 타이틀의 민주당 장외집회를 11시간 54분간 생중계했다. 기대만큼 많은 인파가 모이지 않아서인지 집회는 1시간 20분 만에 끝났지만, 이걸 8번이나 더 반복재생한 것이다. 장외집회에 나오라고 한 자신들의 주문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이런 서비스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쯤되면 MBC를 ‘민주당 기관방송’이라 불러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최민희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이 MBC를 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건 충분히 이해되지만, MBC 구성원 중에는 ‘제대로 된 언론인’의 꿈을 안고 입사한 이들도 있을 터, 회사가 이 모양인데 왜 그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일까?
MBC에 근무하다 부역자로 몰려 퇴사한 분께 이 질문을 드렸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해준다. "현재 MBC 구성원들은 90% 이상이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에 소속돼 있어. 민노총스러운 목소리가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지. 자기 방송이 편파적이라는 건 그들도 알아. 그런데 어떡해? 민노총 노조에 속해야 일신의 안위가 유지되는 걸." 그는 여기에 대해 부연설명을 했다. "신입이 입사하면, 민노총 노조가 접근해서 이것저것 편의를 봐줘. 거기 들어가야 승진도 잘 시켜주고, 자기 소속원이 잘못한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처벌받지 않도록 해주기도 하지. 이런 광경을 보면서 신입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나도 이 루트를 타야겠어. 방송의 공정성, 그게 뭐 중요한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좌파는 자기 사람 만들기를 잘 한다’는 것. 그분의 말을 들으면서 20여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정치에 별반 관심이 없던 2001년 말, 강준만 교수가 쓴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을 읽었다. 노무현같이 깨끗하고 훌륭한 후보를 찍으라는 내용., 저자의 말에 홀딱 넘어간 나는 ‘노사모’에 가입한다. 그 기대대로 노무현은 경선을 통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그로부터 얼마 안 됐을 무렵,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노사모 천안 지부로 발령이 났으니, 좀 나오란다. 약속 장소는 한 식당, 십여 명 정도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없어 보이는 외모 탓에 뭘 입어도 없어 보이는 나와 달리, 다들 남루한 차림이었다. 자기 소개를 한 뒤 우리는 삼겹살을 시켰고,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노무현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 노무현을 돕는 명계남 같은 사람이 집권 후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 정의로운 세상이다, 뭐 이런 얘기들을 나눴다.
모임이 파할 때쯤 주최자로 보이는 분이 일어섰다. "자, 만 원씩 냅시다!" 그때, 내 옆의옆 자리에 있던 분이 당황한 얼굴을 했다. 돈을 미처 챙겨오지 않았다며, 잠깐만 기다려 주면 은행에 가서 찾아오겠다는 것. 실제로 그는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왔다. 그 광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넉넉지 않아 보이는데 이렇게 노무현 지지 모임에 나와 주다니, 고마운 분이다.
모임 요청은 자주 있었다. ‘우리끼리 모여 삼겹살을 먹는 게 노무현 당선이랑 무슨 상관이지?’라는 회의가 들었다. 모임에선 MT를 가자고 하질 않나, 명계남을 천안에 불러 강연회를 할 테니 내가 몸담은 학교의 체육관을 빌려라 등등의 해괴한 요구를 하는 바람에 점차 그들을 멀리하게 됐다.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니 이런 풀뿌리 조직을 만드는 것이 좌파가 그 이념의 구질구질함에도 불구하고 표를 많이 얻는 비결이었다.
없는 살림일지라도 정치에 직접 참여해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사람들, 좌파는 이런 이들을 방관하는 대신 미미한 자리라도 주면서 동기 부여를 시켜준다. 그럼 그들은 감격에 겨워 더 열심히 활동하고, 조직은 날로 커진다. 그들 중 일부는 그럴듯한 타이틀을 부여받는다. 선거 때가 되면 그들은 열혈 선거운동원이 돼서 주위 사람들을 포섭한다. 그렇게 해서 조직이 커지면 그 조직을 이끌었던 장(長)은 더 높은 곳으로 가고, 그를 롤 모델로 하는 이들이 몰려든다. 참여연대 출신의 박원순과 민언련의 최민희 등등 이렇게 큰 좌파 인사는 한둘이 아니다.
이재명처럼 비리로 얼룩진 이를 왜 지지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민주주의는 1인 1표,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하며, 후자의 비율이 훨씬 더 높다. 그 후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좌파가, 근사한 스펙을 가진 이가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는 보수보다 표를 얻는 데 능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조명현 씨를 기억하는가? 목숨 걸고 김혜경의 법카 의혹을 세상에 알린 분, 선거 막판에 터진 그 폭로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지금 대통령은 이재명이었을 수도 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 끝났다, 다시 원래대로 살 수 있겠다. 하지만 이재명은 그 뒤 구속되기는커녕 국회의원이 됐고, 의전서열 8위인 제1야당 대표가 됐고, 그 민주당은 총선에서 175석을 차지했다.
그러는 동안 조명현은 이재명의 보복이 두려워 숨어 살았고, 택배 상하차처럼 신분을 감출 수 있는 곳에서만 일했다. 그 와중에 몸을 크게 다쳐 생계가 어려워졌지만, 보수에서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별로 없었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조명현이 지금 국민의힘 의원이라면, 아니면 보좌관이라도 됐다면, 이재명이 얼마나 두려움에 떨까? 실제로 그는 지난 총선 때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한 일이었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심지어 그를 보좌관으로 채용하려는 이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며 하루하루를 산다.
서해공무원 피살사건의 유가족인 이래진 씨는 그 사건 이후 평생을 지지하던 민주당을 버렸다. 그 뒤 사건에 관련된 박지원과 문재인을 규탄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보수의 그 누구도 이래진 씨한테 관심갖지 않는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사고 직후 보수가 적극적으로 그들을 껴안고 요구를 들어주려 했다면, 그 이후의 전개 과정은 지금과 달랐을지 모른다. 그런데 보수는 ‘우리 책임이 아니다’만 강조하다 그들의 신뢰를 잃었고, 민주당으로 하여금 그 빈틈을 파고들 빌미를 제공했다. 실제로 그 유족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준 건 보수정부건만, 유족들은 좌파가 주최하는 시위 때마다 그 자리에 참석해 보수정권을 욕한다.
민주주의가 1인 1표임을 다시금 떠올려보자. 이번 총선에서 보수가 108석이라도 얻은 게 오히려 과분한 게 아닐까? 우리는 정의이고 저쪽은 범죄자인데, 왜 쟤들이 잘 되냐고 징징거리지 말자. 그럴 시간에 제발 우리 사람을 챙기자. 보수가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미래는 정말 암담할 테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