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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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6일, 한 무리의 좌파들이 촛불을 들었다. 그들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윤석열에게 경고한다. 불법·불통·국민무시 윤석열 규탄 시민촛불", 연단에 선 자들은 ‘선제탄핵’ ‘윤석열 아웃’을 외쳤다.

전 대통령 문재인이 민주주의를 압살할 때는 가만있던 이들이 보수정권이 들어섰다고 다시 기어나온 것도 어이없지만, 더 큰 문제는 선제탄핵을 외친 시기였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겨우 2주 남짓, 대통령이 취임도 하기 전에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기사에 따르면 해당 집회의 사회를 맡은 민생경제연구소장 안진걸은 이렇게 말했단다. "윤석열이 열차에 족발을 올렸다" "우리가 좌절하고 슬퍼하는 동안 윤석열 인수위가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너무나 엉뚱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

안진걸이 언급한 사건은 대선이 한창인 2022년 2월, 전라도 지역 유세를 마치고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벌어진 일. 계속된 유세에 지친 윤석열 후보가 기차 앞좌석에 발을 올리고 있었던 게 전부였으니, 사건이라 할 것도 없다. 더구나 그 열차는 국민의힘이 대선을 위해 임대한 거라, 그로 인해 다른 승객이 불편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보좌역이던 모 인사가 해당 장면을 자신의 SNS에 올렸고, 꼬투리 잡을 걸 찾던 민주당과 좌파들이 이를 대대적으로 키우는 바람에 논란이 됐다. 안진걸은 그때 이슈를 탄핵집회에서 써먹은 것이다.

좌파 시위꾼에 불과한 이의 얘기를 길게 한 이유는 얼마 전 있었던 윤 대통령 담화 후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이 한 말에서 기시감을 느껴서였다. 대통령이 그간 보여온 불통에서 벗어나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쇄신을 약속했지만, 조경태의 평가는 박하기 그지없었다. "국민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는 최악의 기자회견이었다", "누구한테 사과하는지도 모르고 사과하는 게 어딨나. 그 자체만 봐도 사과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내보다 대한민국 국민을 더 사랑한다는 진정성이 느껴졌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게 참 아쉽다."

어떻게 여당 의원이 대통령 담화에 대해 이렇게 박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기대에 못미쳤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최악’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같은 말을 저리 쉽게 내뱉을 수 있는지, 이게 국민의힘 중진의원의 논평인지 아니면 민주당 인사의 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을 깔 수 있다면 누구라도 부르는 MBC, 그중에서도 편파의 선두를 달리는 ‘뉴스하이킥’이 전화 연결을 했을 때 조경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군가에 의해서 등 떠밀려서 기자회견 하는 느낌, 하기 싫은데 마지못해서 하는 느낌, 이런 느낌을 많이 줬거든요. 저는 그런 부분이 상당히 오히려 기자회견을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만큼 실망감을 준 시간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특검에 대해서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시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있을 것’을 암시하기까지 했다.

대통령 담화가 조경태의 고귀한 눈에 차지 않을 수는 있다. 이럴 때 대통령을 설득해 양보를 이끌어 내는 게 당 중진의 역할이건만, 조경태는 임기가 반이나 남은 대통령을 버리겠다는 걸까? 담화 다음날 나온, "민심에 맞는 수준으로 속도감 있는 실천이 중요"라는 한동훈 대표의 입장문을 보면, 조경태가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틈을 타서 자기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조경태는 TV조선에서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5천만 국민이 보고 있는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은 서지 않고 앉아서 회견을 했는데, 서서 회견을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의 수장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할 때 앉아서 하냐?" ‘억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까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대통령이 계획한 담화는 원래 ‘무제한 끝장토론’, 실제로도 두 시간 반에 달했던 그 담화 내내 대통령이 서 있어야 한다는 말일까.

탄핵 건수가 없자 ‘족발’을 입에 올린 안진걸처럼, 조경태도 ‘억까’를 시전한 것이다. ‘국민의힘’과 ‘6선’이란 계급장을 떼놓고 보면 조경태와 안진걸 사이에 무슨 차이점이 있는 걸까? 그런데도 보수 지지자 중 많은 이가 조경태 칭찬을 하는 걸 보고 있노라니, 마르크스의 다음 말이 떠올라 걱정이 된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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