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한덕수 총리는 광양에 있었다. 포스코의 리튬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고, 광양 유일의 분만병원을 찾아서 격려했다. 28일에는 국방대학원 졸업식에서 축사한 뒤 대전 유성에서 규제혁신회의를 주관했다. 그 전날, 전전날에도 한 총리는 나름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해서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존재, 대통령만큼은 아닐지라도 그에 버금가게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11월 30일 기준 그의 재임 기간은 925일, 햇수로 2년 7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1년 가까이 총리직을 수행한 걸 합친다면, 한덕수는 87체제 이후 가장 오래 총리 자리에 머무른 분이다.
문제는 그가 앞으로도 계속 총리직을 수행해야 할 것 같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총리를 할 것 같다며 ‘오덕수’란 별명이 붙은 걸 보면,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그가 총리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는 건 물론 아니다. 기자들과의 소통에서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수준 떨어지는 공격을 받아치는 모습은 보수 지지자들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런데도 총리 교체 얘기가 나오는 건 다음 두 가지 이유다. 첫째, 총리 교체는 역대 정부가 위기를 수습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저공비행을 하는 현 상황에서 총리 교체를 통한 분위기 쇄신은 꼭 필요한 일이다. 둘째, 한 총리는 1949년생, ‘윤석열 나이’로도 75세다. 총리라는 막중한 임무를 계속 맡기는 게 미안해지는 나이 아닌가?
하지만 한 총리가 쉽게 교체될 것 같지는 않다. 이유는 헌법 86조에 적힌 규정 때문,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즉 국회 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이 동의해주지 않으면 현 정부는 새로운 총리를 임명할 수 없다. 지난 2년 반 동안 지겹도록 봐왔듯이, 민주당은 현 정부가 임명하려는 거의 모든 후보자를 반대해 왔다.
얼마 전 KBS 사장이 된 박장범의 경우를 보자. 민주당의 공격 포인트는 올 2월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그가 했던 다음 질문 때문이었다.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그 뭐 조그마한 백이죠. 그 백을 이 어떤 방문자가 김건희 여사를 만나서 그 앞에 놓고 가는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실제 디올 사이트에 가보면 해당 상품이 ‘파우치’라고 나와 있지만, 민주당은 이걸 ‘대통령에 대한 아부’로 규정했다. 심지어 ‘파우치, 조그만한 백’이란 박장범의 발언을 ‘조그마한 파우치’로 왜곡하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게 어떻게 조그마한 파우치냐, 축소하려고 했던 것 아닙니까?" "파우치는 아부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은데 인정하십니까?"
여기에 더해 민주당은 KBS 사장 청문회를 무려 사흘간이나 끌면서 후보자를 괴롭혔고, ‘임명 제청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KBS 본관으로 몰려가 현장검증까지 했다! 민노총 언론노조 출신에 위장전입, 탈세는 물론이고 SNS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를 비방까지 하는 등 정치적 편향성을 보였던 김의철을 두둔하며 KBS 사장으로 만들었던 민주당의 과거를 보면, 박장범에게 "용산의 미션 받고 왔을 것", "KBS가 김건희 방송으로 전락했다" 등의 비난을 쏟아내며 사퇴 요구를 하는 건 정말 어이없다.
다행히 KBS 사장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기에 박장범은 KBS 사장으로 임명됐지만, 한 총리는 경우가 다르다. 그가 물러나면 후임 총리를 뽑지 못할 수 있고, 그 경우 국정 공백은 물론이고 새로 임명될 국무위원 제청도 불가능하다. 지난 4월 총선패배 이후 한 총리가 사의를 표했음에도 결국 수리가 안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당시 정가에 떠돌았던 박영선 총리설도 민주당의 동의를 얻기 위한 고육지책의 하나였을 터. 그런데 민주당에 몸을 담았던 이라고 해서 국회 동의를 받을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 때 총리를 지낸 한덕수마저 민주당이 총리인준을 안해주며 ‘자진사퇴’를 요구했던 2년 반 전을 돌이켜보면, 세종대왕급 인사가 총리 후보로 지명된다 해도 동의 안 해줄 건 뻔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삼권분립, 그런데 행정부가 일 좀 해보겠다는데, 입법부가 사사건건 방해하는 건 삼권분립의 정신에 맞는 것일까? 대체 언제까지 민주당의 훼방에 휘둘려야 하나? 지금 민주당이 ‘대통령 임기축소 개헌’을 주장하고 있던데, 현 대한민국에 시급한 건 ‘국회 권한을 줄이는 개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