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오후 3시경, 헌인릉 인근 국정원 주차장에서 드론으로 국정원을 촬영하던 중국인 관광객 A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A는 "세계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아 헌인릉을 촬영하다가 실수로 국정원까지 찍게 됐다"고 변명했다. 경찰은 ‘대공 혐의점 없는 것으로 1차 판단’하고 10일 밤 A를 석방했다.
"해변의 모래가 스파이 활동의 목표물이라면, 러시아는 어두운 밤에 잠수함으로 해변에 몰래 들어가 양동이 가득 모래를 담아 모스크바로 가져간다. 미국은 인공위성으로 해변의 모래를 분석해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얻어 낸다. 중국은 천 명의 관광객을 해변에 보내 옷에 묻은 모래알을 모두 털어 내게 한다."
FBI 중국 분석관이었던 폴 무어(Paul D. Moore)는 중국의 정보수집기법이 다른 나라와 다른 데 주목했다. 무어는 중국이 전문 스파이를 대신해 일반인과 비전문가, 특히 관광객과 유학생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세계 최고 14억이라는 인구학적 조건에 기반을 둔 ‘천 개의 모래알’(thousand grains of sand)이라는 저인망식 정보수집기법이다. 중국은 기밀 정보와 상관없이 모든 정보를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정보들로부터 종합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조각 정보’ ‘사소한 데이터’를 모두 모아 ‘통찰력 있는 큰 그림’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모자이크 이론(mosaic theory of intelligence gathering)과 비슷하나, 일반인이나 비전문가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의 수준이 모자이크 이론보다 낮다는 것이 다르다.
무어는 ‘천 개의 모래알’ 기법을 통해 수집된 질 낮은 정보를 ‘엑스 플러스’(X-plus)라 불렀다. 중국은 반드시 기밀 정보만 수집하지 않았다. 중국에 플러스가 된다면 어떤 정보(X-plus)라도 수집했다. 무어는 ‘천 개의 모래알’ 기법을 통한 중국의 정보활동을 ‘어설픈 스파이 활동’(espionage by indiscretion)으로 명명했다. 미국의 방첩당국은 중국의 전문성 없는 정보 수집 활동을 과소평가했다. 미국의 사법당국은 중국의 기밀성 없는 ‘어설픈 스파이 활동’을 간첩으로 처벌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한 쪽의 약점은 다른 쪽에선 강점이다. 중국의 전문성 없는 정보 수집 활동은 미국 방첩당국의 탐지를 오히려 까다롭게 했다. 중국의 기밀성 없는 ‘어설픈 스파이 활동’은 미국 사법당국의 엄격한 잣대로부터 오히려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지난 6월 25일 중국인 유학생 3명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인근 야산에서 드론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공모함을 촬영하다 체포됐다. "호기심으로 촬영했다"던 유학생들의 핸드폰에서 2년간 찍은 군사기지 사진 500여 장과 중국 공안으로 추정되는 전화번호가 저장되어있는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11월 9일 국정원을 촬영하다 체포된 중국 관광객 A는 인천공항으로 입국하자마자 렌트카로 헌인릉으로 직행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천 개의 모래알’로 잠입한 중국인 유학생 3명과 중국인 관광객 A의 ‘어설픈 스파이 활동’이다. ‘천 개의 모래알’은 인권과 적법절차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체제의 법과 방첩당국의 자만심을 악용한 중국의 간첩 행위에 다름 아니다.
‘국가정보법’이 2017년 중국에서 제정됐다. 국가 기관은 국가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국가정보법 제7조), 중국의 모든 기업과 개인은 국가의 정보 수집 요청에 협력해야 한다(14조). ‘천 개의 모래알’ 기법의 법적 근거가 되는법이다. ‘천 개의 모래알’로 잠입하는 중국인에 대해 우리도 입법적 대응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