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간첩도 잡을 수 있을 전망이다. 형법 제98조 간첩죄의 범위를 ‘외국’으로 바꾸는 형법 개정안이 지난 13일 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중국 등 다른 나라를 위해 기밀을 수집·유출하는 행위도 처벌할 수 있다.
지금까지 형법은 ‘간첩’을 적국으로 한정했다. 문제는 헌법 상 북한도 우리 영토이기 때문에 북한 정권은 적국이 아니라 ‘국가를 참칭한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했다. 때문에 대법원 판례에 따라 북한을 ‘적국’으로 취급해 간첩이나 종북세력을 처벌했다. 또한 지금까지 북한 이외 다른 국가를 위해 간첩 행위를 저지르는 세력이나 산업스파이를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형법 개정안에는 외국뿐만 아니라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한 간첩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명시했다. 여야는 이번 형법 개정안이 이달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날 법사위 소위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보유하고 관리·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한편 형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직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오래 걸렸다. 이제 거의 다 왔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번에 여야 합의로 통과한 간첩죄 범위 확대 형법 개정안은 오래 전부터 그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특히 2022년 말에 불거진 중국 비밀경찰서 사건은 형법 개정 필요성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중국 비밀경찰서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수사를 할 수 있는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어 오랜 기간 허송세월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올해 2월 비밀경찰서로 지목된 중식당 ‘동방명주’와 주인 ‘왕해군’이 연루된 법인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 했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는 올해 6월 왕 씨 등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올해 6월에는 미 핵추진 항공모함이 입항한 부산 해군작전사령부를 드론으로 몰래 촬영하던 중국인 유학생 3명이 붙잡혔다. 부산경찰청은 지난 13일 중국인 유학생들이 최소 2년 동안 찍은 우리나라 군사시설 사진만 500장이 넘는다고 밝혔다. 게다가 이들의 휴대전화에는 중국 공안으로 추정되는 전화번호도 저장돼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이 중국 공안과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중국 공안은 흔히 ‘경찰(Police)’로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 독재체제를 떠받치는 조직이다.
지난 9일에는 자신을 물류업체 회사원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자마자 렌트카를 빌려 서울 서초구 내곡동 소재 헌인릉으로 곧바로 가서는 드론을 띄워 국가정보원 청사를 촬영하다 적발됐다. 당시 이 중국인은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라며 드론의 메모리 카드에 담긴 영상과 사진을 삭제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부산 해작사를 촬영한 중국인 유학생들과 국정원 청사를 몰래 촬영한 중국인 관광객을 일단 풀어줬다. 대신 출국정지 조치를 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형법 상 간첩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기관들은 이런 중국인들의 보안시설 드론촬영이 중국 당국에 의해 사전에 기획됐을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관광객이나 유학생을 가장해 서방 국가 보안시설을 드론으로 촬영하다 적발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