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햇빛이 눈부셔 죽였다"...부조리한 세상에 던진 인간 소외

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 

‘이방인’은 백여 개 언어로 출판된 소설로 세상에 처음 나올 때부터 문학적 사건이었다. 카뮈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철학자이자 비평가 롤랑 바르트(Roland Gerard Barthes)는 이 중편소설을 두고 인류가 축전지를 발명한 것과 맞먹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또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이 소설의 가치를 일찍이 알아보며 ‘이방인 해설’(Explication de L’Etranger)을 자처했다.

◇ 햇빛이 당긴 방아쇠

‘이방인’의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지중해에 면한 알제리아(Algeria)의 수도 알제(Algiers)에서 회사원인 청년 뫼르소는 어느 날 양로원에서 요양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는다. 뫼르소는 회사에 이 사실을 고하고 이튿날 양로원으로 가서 장례를 치른다. 그날 뫼르소는 한때 직장동료였던 연인 마리를 만나 어머니의 사망사실을 잊은 채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뫼르소는 아파트 같은 층에 사는 남자 레이몽과 유일하게 가깝게 지낸다. 레이몽은 변심한 애인을 복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뫼르소를 끌어들인다. 뫼르소는 레이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우연히 아랍인들과 마주치면서 싸움이 벌어지고 레이몽은 칼침을 맞고 피를 흘린다.

우발적 사건에 휘말려 든 뫼르소는 갈증을 느끼며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레이몽을 칼로 찔렀던 아랍인을 우연히 만나고, 순간 뫼르소는 강렬한 태양빛에 눈이 부셔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긴다.

알베르 카뮈와 갈리마르 출판사 발간 ‘이방인’.
알베르 카뮈와 갈리마르 출판사 발간 ‘이방인’.

◇ 자기 자신도 소외시킨 뫼르소

‘이방인’의 문체는 간결하고 건조하다.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etre hier, je ne sais pas.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을지도 모른다"라고 시작하는 소설은 프랑스어 초급자 이상이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시작부터 끝까지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단어만을 사용하여 문장을 완성한다.

‘이방인’의 문장은 집요할 정도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뫼르소의 행동거지를 묘사한다. 뫼르소는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미래에 대한 계획도, 욕심도 없다. 뫼르소는 사소한 변화마저도 추구하지 않는다. 오늘날로 치면 은둔형 외톨이에 비견될 수 있는데, 다른 게 있다면 뫼르소는 회사를 다닌다는 점이다.

뫼르소는 이상하리만치 이웃과 사회에 무관심하다. 햇빛이 눈부셔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이후엔 완전한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도와 형량을 줄이려는 국선변호사도,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뫼르소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신부도, 심각한 표정으로 재판에 임하는 판사도, 그 누구도 뫼르소의 범행동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뫼르소는 자기가 저지른 사건으로부터도 소외되고 만다. 변론이 끝나고 결심공판 때 뫼르소는 사람들의 관심을 거부한 채 담담하게 사형선고를 받아들인다.

◇ 인간의 실존과 부조리

카뮈는 어머니의 죽음에 전혀 슬퍼하지 않는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건 바로 소외된 인간의 실존, 그리고 부조리(不條理)다. 부조리는 이치와 도리에 어긋나는 걸 뜻하지만 철학적으로는 삶의 의미를 발견할 가능성이 없을 때 사용되는 말이다.

인간 소외는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일상, 인간의 정체성, 자아로부터 멀어지거나 분리되는 현상이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인간의 운명은 예정된 게 아니라 우연히 결정된다. 카뮈는 뫼르소를 통하여 실존주의 철학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예정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나 사건들의 연속을 산다. 재수가 없으면 뫼르소처럼 어느 날 우연히 별다른 이유도 없이 단지 햇빛이 눈부셔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
 

국내 번역 출간된 다양한 '이방인'과 '페스트' '시지프 신화'
국내 번역 출간된 다양한 '이방인'과 '페스트' '시지프 신화'

◇ 시대가 영감 불어넣은 걸작

1942년, 그의 나이 30세에 카뮈는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놀라운 건 ‘이방인’이 카뮈의 첫 번째 소설이었다는 점이다. ‘이방인’ 발표 후 전 세계인이 열광한 것은 위에서 열거한 이유들만 가지고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이방인’의 탄생 배후에는 1, 2차 세계대전이 가로놓여 있었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정신적 공허는 깊었고, 대중들은 뫼르소라는 인물에 공감했다. 오늘날에도 ‘이방인’이 여전히 읽히는 건 당시와 시대적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인간 소외 현상이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아마도 작가는, 대부분의 명작들이 그러하듯 별다른 산고(産苦) 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작품을 써내려 갔을 것이다. 그 시대가 작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말이다.

◇ 노벨문학상 수상 3년 후 사망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1913년 알제리아 소도시 몽도비에서 프랑스계 포도농장 노동자와 스페인 혈통의 하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한 달 만에 전사했고, 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자랐다.

카뮈는 자동차 수리공, 인턴 기자, 가정교사를 하며 알제대학교에서 철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카뮈는 파시즘, 스탈린주의 등 전체주의에 반대성명을 발표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 저널 콩바(combat)의 편집장을 하며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 ‘이방인’과 ‘시지포스의 신화’, ‘페스트’ 작품 발표 후 약관 43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46세에 자동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L’Etranger? 국외자? 이인? 역시 이방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L’Etranger는 외국인 또는 국외자를 뜻하는데,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될 때 ‘이방인’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탓에 지금은 널리 ‘이방인’으로 통한다. 최근에 어느 출판사가 출간한 책은 앞선 번역본들과 차별을 주기 위해 그런 것인지 ‘이인’(異人)이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이리 저리 생각해봐도 ‘이방인’만한 번역도 없다. ‘이방인’을 출간한 프랑스 출판사 갈리마르(Librairie Gallimard)의 전언에 따르면 ‘이방인’은 백여 년의 출판사 역사 이래 최고의 베스트셀러였고 현재에도 연간 20여만 부가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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