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정한 행복은 '자유'...지금 여기 이 순간을 느껴야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이야기나 좀 들어봅시다. 당신은 청춘을 바쳐서 온갖 종류의 책들을 다 읽었어요. 그래서 얻어 낸 게 대체 뭐요?"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는 그리스를 대표하는 국민작가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번번이 수상에 이르지 못하자 알베르 카뮈를 비롯해 많은 작가와 평론가들은 카잔차키스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카잔차키스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일로 미루어 보건대, 노벨문학상은 전 세계를 대표하는 상이 아니다.
1946년에 발표한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의 대표작으로 삶의 본질과 자유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담고 있다. 우리말 번역본과 영어명은 ‘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지만 원제(原題)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이다. 소설 출간 후 그리스정교회는 수도원에 불을 지르는 등 조르바의 난잡한 행동들을 문제 삼으며 신성을 모독한 작가를 맹비난했다.
실존인물 일자무식장이 조르바
주인공 조르바는 작가가 젊은 날에 만난 실존인물이었다. 카잔차키스는 학교 문턱도 밟아본 적 없는 일자무식장이 조르바를 평생 동안 좋아했고 흠모했고 그리고 동경했다. 카잔차키스는 한갓 떠돌이 노동자에 지나지 않는 한 사내의 삶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알았고, 그리하여 작가는 실존인물 조르바를 부처와 니체에 버금가는 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소설은 일인칭 화자인 ‘나’의 진술이 주를 이룬다. 나는 책과 철학에 심취한 지식인으로 매너리즘에 빠져 살다가 모든 걸 내려놓고 지중해 크레타섬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갈탄광산을 사들인 후 늙은 노동자 조르바를 고용하고 그와 함께 생활한다. 조르바는 열정적인 늙은이로 음악과 춤, 여자, 자연과 교감하며 삶을 즐긴다. 조르바는 규칙이나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오늘에 충실한 사람이다. 조르바의 시계에는 과거와 미래는 없고 오직 현재만 있다.
나는 조르바의 삶의 방식을 바라보며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갈탄광산 사업은 결국 실패하는데, 조르바는 실패조차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춤으로 승화시킨다. 광산사업 실패 후 나는 조르바와 작별한다. 비록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나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르바를 만났기 때문이고, 나는 비로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없는 진짜 자유인 조르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삶에 대한 통찰과 철학적 메시지가 담긴 문장들로 가득하다. 조르바의 말과 행동은 미지를 탐구하는 모험과 같다.
조르바는 말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인이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로운 마음, 그게 진정한 행복이야." 이렇듯 조르바는 삶의 진정한 행복은 자유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난 이거 하나는 알고 있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건 춤추고 노래하고 웃을 때야." 조르바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하며 단순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일자무식장이지만 조르바는 이론과 경험의 차이를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조르바는 또 말한다.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안 된다네. 인생은 책 속에서가 아니라 바로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서 느껴야 해." 조르바는 책과 지식으로는 삶을 이해할 수 없으며 삶은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르바는 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광산이 무너졌다고? 그게 무슨 대수야? 춤을 춰! 그게 바로 인생이야." 조르바는 실패를 겪은 후에도 춤을 추고, 실패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너의 머릿속에서 항상 왜? 하고 묻지만, 나는 반대로 그게 왜 안 되지? 하고 묻는 게 다르지."
조르바는 이성적 사고를 하는 나와 철저히 대비되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 그는 이론이나 의심 대신 행동과 실천을 중시한다.
조르바와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음이 하나도 두렵지 않아. 살아가는 동안 삶을 즐기지 못한다면,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조르바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있는 동안 삶을 충분히 생명을 즐기고 누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하게 살면 삶은 행복해진다
구구절절한 조르바의 철학은 단순하다. 불행은 복잡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따라서 단순하게 살면 행복해진다. 바람 냄새, 아이들 웃음소리, 와인 맛을 즐기면 그만이다.
조르바는 단순하고 소소한 것들로부터 행복을 찾는다. "인간은 약하지만 때때로 강한 힘을 발휘한다오. 인간의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사랑하면서 고통을 겪고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데 있다오."
조르바의 이 말은 인간은 고통과 사랑을 통과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랑은 불길 같은 거라오. 이 불은 때로 타오르기도 하고 때로 사위지만 그 불꽃 속에서 우리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오." 조르바는 사랑을 삶의 본질적인 경험으로 간주하면서 사랑이야말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조르바는 또 말한다. "마지막까지 춤춰야 해요. 죽음이 오기 전까지 춤추는 걸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즐기라는 조르바의 이 말은 삶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한편, 조르바의 철학을 비판하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기성관념과 사회적 체제를 무시한 채 즉흥적인 자유만 중시하는 개똥철학으로 보는 게 그러하다. 그렇긴 하지만 철학과 개똥철학의 경계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개똥철학이라고 해서 본격철학이 되지 말라는 법 또한 없다.
무엇보다 카잔차키스는 실존인물 조르바를 통해 그동안 관념에 지나지 않던 자유의 실재(實在)를 보고 느꼈다. 인간의 삶에 자유보다 소중한 가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Den elpizo tipota(I hope for nothing), Den forumai tipota(I fear nothing), Eimai eleftheros(I am free).’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카잔차키스의 이 묘비명은 지중해 크레타섬,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소박한 나무십자가 뒤에 있다. 짧은 이 문장 속에 카잔차키스가 평생 추구했던 삶의 철학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다.
그리스 크레타섬 이라클레이온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는 오스만제국(지금의 튀르키예)의 지배 아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크레타섬에서 중등 교육을 마치고 1902년 아테네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재학 도중 수필 ‘병든 시대’와 소설 ‘뱀과 백합’을 출간했고 희곡을 쓰기도 했다. 1907년 파리로 유학, 베르그송과 니체 철학을 공부했다. 영혼의 자유로움을 갈망하며 전 세계를 방랑하던 카잔차키스는 1957년 독감에 걸려 독일에서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 ‘오디세이아’(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