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이춘근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연구하려는 대상을 찾아내기 위해 역사를 샅샅이 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떤 사건을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두 나라 병사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총격전이 벌어졌고 그 결과 양측 도합 10명의 병사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치자. 그 사건은 전쟁인가 아닌가? 국제정치학자들은 이같이 10명 정도 사망한 사건은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국가 간의 모든 무력 분쟁을 전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학자들이 대략적인 합의를 이루고 있는 전쟁의 기준은 전투 사망자가 1000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즉 1000명 미만이 전사한 사건들은 전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999명 죽은 경우는 전쟁이 아니냐며 목소리 높여 반문하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군인 전사 1000명이라는 기준은 귀납법적으로 도출된 것이다. 수천 년 세계 역사를 살펴본 결과 1000명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정치적·군사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어 정해진 수치다. 처음에는 학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숫자가 1000명이었는데 오늘날에는 거의 표준이 되었다. 일례로 ‘1993년 세계 도처에서 64개의 전쟁이 발발했다’라고 어느 신문이 발표했다면, 그것은 적어도 1000명 전사자가 발생한 국제 분쟁이 64개였다는 소리다.

이처럼 전쟁을 묘사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전사자 숫자가 얼마나 많은가의 여부다. 군인 전사자의 숫자로 따져 보았을 때, 한반도라는 좁은 지역에서 일어난 6·25전쟁은 인류역사상 7대 전쟁에 들어갈 정도로 잔인한 전쟁이었다. 6·25전쟁(1950-1953, 3년)보다 전투 사망자(Battle Death)가 더 많았던 전쟁은 2차 대전(1939-1945, 6년), 1차 대전(1914-1919, 5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1713, 12년), 7년 전쟁(1756-1763, 7년), 나폴레옹 전쟁(1803-1815, 12년), 그리고 30년 전쟁(1618-1648, 30년)뿐이다. 6·25전쟁보다 인명 피해가 많은 전쟁들은 위 자료에서 보듯 6·25전쟁보다 최소 2배 이상 지속시간이 긴 전쟁들이었다. 즉 6·25전쟁은 그 잔인성이 훨씬 심각했다는 말이다. 짧은 기간에 세계 7번째 인명피해를 냈으니 말이다.

지난 70년 동안 자유와 평화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는 아직도 대단히 허약한 기반 위에 있다. 김정은 정권은 아무 때나 전쟁 도발이 가능한 정권 아닌가. 6·25 전쟁 73년을 맞이하여 그토록 잔인했던 전쟁에서 나라를 구해주어 우리로 하여금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해준 호국영령들에게 다시 감사드린다. 우리들은 그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말자고 호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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