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의 염전 노예 문제가 한미 간 인권 현안으로 번지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최근 신안의 한 염전주가 60대 지적장애인 A씨를 10년간 무임금으로 일을 시킨 혐의에 대해 진상 파악에 나섰다. 미 대사관은 A씨가 그간 구조되지 못한 이유, 신안군이 지난 2023년 염전주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뒤에도 A씨가 염전주와 분리되지 않은 이유 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미국 정부는 신안 태평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의 수입을 막았다. ‘염전 노예’ 사건으로 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미 국무부가 매년 발간하는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에서 각국을 1~3등급으로 분류하는데, 한국은 20년간 1등급을 유지하다 지난 2022년 염전 노예 사건으로 인해 2등급으로 강등됐다.

전근대적 노예 노동인 염전 노예 사건이 알려진 것은 오래 전부터다. 하지만 여론이 끓어오를 때만 반짝 이슈가 될뿐 잊혀질 만하면 비슷한 사건이 돌출하는 현상이 반복돼왔다. 한번 구출(?)된 노예가 제 발로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이 문제는 노예와 장애인이라는 두 키워드의 상관관계를 풀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염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대개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염전에 공급하는 것은 대도시의 인력 업체들이다. 길거리를 떠도는 장애인 등 한계 인력들을 수집해 수수료를 받고 염전주에게 넘기는 것이다. 장애가 있으니 권리를 요구하지 못하고 염전주들은 이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도 오히려 ‘돌봐주고 보호해줬다’고 주장하게 된다.

문제의 근원은 규제다. 농어업에 대기업의 투자를 금지하기 때문에 염전에 대자본이 투입될 수 없고 산업의 고도화에 한계가 있다. 영세한 염전주가 외딴 바닷가의 거친 노동에 부릴 수 있는 인력은 현실적으로 장애인뿐이다. 공권력이 개입해 노예를 풀어줘도 이들이 염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실제로 일을 하거나 몸을 의탁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전근대적인 규제가 21세기에 들어와서까지 전근대적인 노예 노동을 온존시키고 있는 것이다. 염전에 대자본이 투입돼 시설과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지적 장애인 등 한계 노동력들에게 적절한 일자리와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다음 세기에도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결코 염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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