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의 뉴럴링크 임상시험 시작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2025년 10월부터 인간 뇌에 칩을 심는 임상시험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임상시험이 아니다. 사람의 뇌 속에 칩을 심어 질병을 치료하려는 역사적 혁신의 시작일 수도 있다. 뇌 속에 박힌 칩은 뉴런 신호를 읽고 이상이 생기면 즉시 전류를 되돌려 보내 회로를 교정한다. 즉 뇌 속에 스스로 판단하고 반응하는 ‘AI 의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운동신경 마비나 언어장애처럼 고칠 수 없던 질환이 뉴럴링크의 칩으로 다시 움직이고 다시 말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약물로 증상을 억눌렀지만 앞으로는 전기 신호로 회로 자체를 치료하는 시대로 가는 길이 열리고 있다.
임상시험 성공시 5년 내 상용화
임상시험이란 새로운 의료기술이나 약물을 실제 사람에게 공식적으로 처음 적용하는 과정이다. 임상시험에서 성과가 입증되면 빠르면 5년 내 상용화된다. 정신병 완전 퇴치 등 뇌로 영향받는 모든 질병을 극복하는 꿈의 기술 첫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예컨대 손상된 시각피질을 자극해 시각을 복원하거나, 감정 조절 회로에 직접 신호를 보내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을 완화한다든가, 뇌의 신경세포에 손상과 퇴화가 생겨 발생하는 질환인 알츠하이머를 정복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2024년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는 세계 최초로 인간 뇌에 칩을 이식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아이(eye) 트래킹처럼 눈동자 위치를 파악하는 장치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는 놀라운 장면이 연출됐다. 하지만 과학계의 시선은 일반인들과 조금 달랐다. 뉴럴링크의 실험에 대해 기술적 혁신보다는 이미 검증된 성취의 재현에 가깝다는 매운 평가를 했다.
2004년 이미 인간이 커서를 조종한 사례가 존재하며, 심지어 뉴럴링크처럼 침습식(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뇌에 직접 시술하는 장비)이 아닌 비침습식(피부를 통과하지 않고 신체 외부에서 내부를 측정하는 방식) 장비나 혈관 내 전극을 이용한 다른 기업들도 이미 비슷한 수준의 제어를 구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공개된 정보가 지나치게 제한적이었고, 안전성과 수술 방식에 대한 검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가 아닌, 그들이 공개하고 싶은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미 20년 전 인간이 해낸 일을 뉴럴링크가 획기적 진보로 포장하고 있다는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동전만한 원형 칩 뉴런 인근 삽입
20년 전 구현된 기술을 지금 와서 꺼낸다는 힐난에 대한 답은 필자가 대신 해줄 수 있다. 바로 AI의 비약적인 발전 때문이다. 과거에는 뇌파를 수집해도 그 복잡한 신호를 빠르게 해석할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AI라는 강력한 무기가 생긴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소형화된 반도체와 전극기술 발전이다.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굵고 단단한 전극 몇 개를 머리에 심는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1000여 개의 전극을 한 번에 삽입해 훨씬 정밀하게 신호를 읽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에 시너지가 발생하면서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BCI)는 단순한 의학 장비를 넘어 신경 인터페이스 산업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뉴럴링크에서는 이 기술의 핵심으로 ‘링크’(Link)라는 하드웨어를 사용한다. 지름 2.3㎝ 두께 8㎜ 동전만한 크기 원형 칩으로 1024개의 폴리머 전극이 연결돼 있다. 이 1024개의 전극이 로봇의 정교한 손으로 뇌의 모세혈관을 피해 정확히 뉴런 인근까지 정밀하게 삽입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로봇은 뉴럴링크에서 자체 제작한 수술 로봇 R1이다. 고배율 현미경과 최첨단 AI 알고리즘이 탑재된 자동 수술 로봇이다.
뇌를 다시 쓰는 기술이 목표
뉴럴링크가 바라보는 미래는 단순히 칩을 머리에 이식하고 마우스 커서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뇌 신호를 읽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뇌를 다시 쓰는 기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전까지의 기술이 뇌의 신호를 일방적으로 읽는 것이었다면, 뉴럴링크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로 읽고 되돌려주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명은 뉴럴링크의 ‘딥’(Deep)이다.
예를 들어 파킨슨병 환자는 뇌의 일부 회로가 오작동해서 몸이 떨리거나 근육이 굳는 것인데, 지금까지는 뇌에 전극을 넣고 일정한 전류를 계속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증상을 완화했다. 이는 전문가들 말로는 공사장 소음을 없애겠다고 노래를 크게 튼 것과 같다고 한다. 소리를 조절할 수도 없고, 공사가 잠시 멈추어도 전류를 그대로 흘린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뉴럴링크의 딥은 다르다. 뇌 속의 칩이 뉴런들의 신호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다가 이 회로가 지금 잘못됐다고 판단, 감지하게 되면 그때만 미세한 전류를 보내 문제를 바로잡는다. 자극을 무작정 쏘는 것이 아니라 AI를 통해 언제, 얼마나, 어디에 자극을 줘야 할지 스마트하게 결정하는 것이다. 단순한 자극 장치가 아니라 자율 판단 신경 치료기, 뇌 속에서 작동하는 AI 의사인 것이다.
더 나아가 감각 피드백을 뇌로 돌려주는 기술이 완성되면, 인공사지에 촉각을 부여하거나 의사소통 능력을 잃은 환자가 생각만으로 대화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모두 SF 영화나 소설 같은 데서 본 내용들일 텐데,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뇌 속의 AI 의사
하지만 뉴럴링크의 비전은 여전히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있다. AI를 동원하더라도 인간의 감정과 의지는 아직 해석하고 정복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고차원적이기 때문이다.
뇌에는 전극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도파민·세로토닌·아세틸콜린 등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화학적 반응까지 일어난다. 따라서 아직은 전기적 해석만으로 인간의 의지를 완전히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다. 윤리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도 빠지면 섭섭한 단골손님이다. 인간의 감정을 기계공학적인 힘으로 조절하는 것은 위험한 신의 장난임은 부정할 수 없다.
기술적 한계도 있다. 전극을 뇌 전체에 걸쳐 삽입할 수도 없고, 삽입 과정에서 조직 손상·염증·면역 반응이 발생하면 전극 표면에 세포가 들러붙어 신호가 약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려면 과학계와 의학계 그리고 정치계와 윤리적 문제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뭉쳐 협력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처럼 현실의 장벽은 높지만 이 복잡한 생태계를 헤쳐 나가면서 가지를 뻗어나가는 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방향성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AI 너머 그 이후의 시장을 지배할 기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저 너머의 무언가’로 꼽을 후보들은 매우 다양하다. 세상을 뒤바꿀 양자컴퓨팅이 될 수도 있고, 차세대 전지인 전고체(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한 꿈의 배터리) 같은 것이나 핵융합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거기에 인간 뇌에 칩을 심는 기술도 반드시 들어가 있다.
KBS TV 대기획 ‘트랜스휴먼’(총 3부작) 중 지난 19일 방송된 2부에 2024년 뉴럴링크의 첫 임상시험자 놀란드 아르보가 출연했다. 다이빙 사고로 목 아래가 마비된 놀란드는 뉴럴링크 칩 이식 후 일상적인 일들을 하고 있다. 그의 머리에 뿔처럼 불쑥 솟아올라 보이는 것 2개가 뇌에 이식된 뉴럴링크 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