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팜 혁명 이끄는 첨단기술
4~5년 전, AI를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그 때, 관련 논문이나 전문가들은 어떤 직업은 사라질 것이고 웬만한 노동력은 대체될 것이라는 얘기들을 했다. 그때의 예상들과 지금의 현실은 다르다. AI와 가장 거리가 가장 멀 것이라고 생각했던 창작 예술 분야(그림·음악·영상·소설 등)가 가장 먼저 정복당했고, 예상한 대부분(법·교육·정치·회계 관련 등)의 분야가 금전적 그리고 윤리적인 이유로 아직 AI의 침범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AI 거품론’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재, 이제 일부에서는 AI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부드럽게 녹여 사용하는 시기로 접어든 것 같다. 그 가운데 AI와 가장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분야가 농업이다.
스마트 팜에 자연스럽게 들어선 AI
농업은 인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류의 역사 그 자체다. 인류의 농업은 1950~1960년대에는 기후를 극복했고, 1980~2000년대에는 환경과 공간을 극복했다. 그리고 AI 시대인 현재는 노동력을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농업은 인류가 발전하게 된 계기이자 언제나 첨단기술의 시험장이 되고는 했다. AI가 없던 1950~60년대에도 스마트 팜이라는 자동화 기술이 있었다. 비닐하우스가 투입되면서 인류는 날씨도 극복했다. 1989년에는 대한민국에서도 하우스 내부의 온도와 습도 등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첨단기술이 도입 보급됐다.
인터넷 네트워킹이 정착하면서 그 혜택을 초기에 받았던 것도 스마트 팜이었다. 해가 들지 않는 대형 건물 안에서도 인공태양 빛으로 작물을 키웠고, 흙도 필요 없는 아파트형 식물공장 단계에 이르렀다. 빌딩, 사막 그리고 우주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AI 기반 자율주행 트랙터는 정해진 경로를 따라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며, 농부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이 모든 과정을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한다.
한국인이 만든 똑똑한 수확 로봇
AI 기술이 적극 도입된 농업 사례들에는 노동력 부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부족한 노동력을 파종부터 수확까지, 반복적이고 힘든 작업을 로봇이 대체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 팜 기술은 AI와 그래픽카드가 농업에 적극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최첨단의 끝을 달리고 있다.
한국인 이길우 대표가 미국에서 창업한 ‘조르디’(Zordi)라는 회사는 정찰 로봇과 수확 로봇을 통해 농작물 수확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물을 자라게 하는 것까지 만들어놨으니, 이제 완벽하게 수확하는 것까지 구현된 것이다.
조르디는 스마트 팜 기술에 AI와 그래픽카드를 적극 투입하고 있다. 그래픽카드를 활용해 작물의 건강부터 품질 그리고 개별적 수확 여부 등을 판별한다. 이후 전문적으로 훈련시킨 로봇이 돌아다니면서 과일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수확한다.
그동안 로봇을 이용한 수확은 품질의 등급을 포기해야 했다. 수확한 농산물을 인간이 일일이 다시 확인해서 등급별로 나누어야 했다. 하지만 조르디의 로봇은 지금 수확해야 될 것과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들을 알아서 구분하니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수확된 작물들은 최고의 품질을 약속한다.
잡초 제거 특명 받은 가위 로봇
첨단 그래픽카드를 농업에 사용한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어떻게 보면 다소 단순하고 원초적 그리고 직관적으로 활용한 방법인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팜와이즈’(FarmWise)라는 기업은 잡초를 농약 없이 제거하는 로봇을 만들었다.
구조와 원리는 매우 단순하다. 10대의 카메라를 통해 논밭을 지나가면서 촬영하고, 이 촬영된 사진과 영상을 그래픽 카드를 통해 분석한다. 이후 가위같이 생긴 팔로 작물을 제외한 잡초를 물리적으로 헤집어 제거한다.
이러한 기술을 개발하게 된 배경에는 역시 농촌의 노동력 부족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56%의 농장주가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는데, 제초 작업 로봇은 같은 시간에 사람 10명분의 일을 할 수 있다. 팜와이즈는 부족한 인력도 메우고 하루 24시간 주 7회 일할 수 있는 로봇으로 그동안 인간이 할 수 없었던 일도 대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싸지만 효율 높은 레이저 로봇
제초 로봇을 만드는 또 다른 회사로는 ‘카본 로보틱스’(Carbon Robotics)가 있다. 지구의 잡초들은 인간이 만들어 낸 제초제에 계속 내성이 생기고 있다. 잡초와 제초제의 창과 방패 싸움으로 매년 새로운 제초제가 나오며 비용은 계속 올라간다. 농장 크기가 한국의 시 단위 크기인 미국에서는 사소한 제초제 문제가 천문학적인 돈으로 바뀔 수 있다.
카본 로보틱스에 개발한 로봇은 원리는 팜와이즈의 로봇과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다르다. 카본 로보틱스의 ‘레이저위더’라는 로봇은 이름처럼 레이저를 이용해 잡초를 제거한다. 피부과에서 얼굴에 검게 피어오른 기미를 레이저로 태워 제거하는 것은 연상하면 된다.
레이저위더는 24개의 그래픽 카드가 탑재된 AI를 통해 작물과 잡초를 구분해 잡초를 레이저로 지져 없앤다. 가위로 물리적으로 찢어 버리는 팜와이즈와는 다른 길을 간 것이다. 가위 대신 레이저를 사용한 장점으로는 기계공학적 복잡성이 줄어들어 관리가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것이다.
물론 장비가 장비니 만큼 가격은 어마무시하다. 한화로 약 21억 원에 달하는 장비지만, 놀랍게도 미국 농가에서 구입 후 잡초 관리 비용을 최대 80% 가깝게 절감하는 효과를 냈다고 한다.
농업은 AI와 잘 만난 모범적 사례
농업을 위한 최첨단 기술은 스케일이 큰 미국의 농장에서나 가능한 기술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작은 비닐하우스에서 AI 솔루션을 적용해 생산성을 40% 이상 높인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는 귀농을 꿈꾸는 청년 농업인에게 경험 부족이라는 큰 장벽을 허물어 주는 사다리가 되어주고 있다.
물론 단점도 존재하는 양면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새로운 기술 도입에 필요한 높은 초기비용과 기술 적응 어려움이 있긴 하다. AI 기술 도입 여부에 따른 농가간 생산성 및 소득 격차가 더욱 벌어져 평준화가 힘들어진다는 것도 있다.
하지만 농업이 가지는 올드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 어떤 분야보다 AI가 농업 첨단 기술에 친화적이며 자연스럽게 도입되고 있다. AI와 농업의 융합은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고품질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며, 나아가 환경까지 보호하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추구한다.
전문가들이 우려한 것처럼 최근 들어 AI가 범죄에 악용되는 일들이 늘고 있다. 그 수법은 점점 치밀해지고 정교해져 간다. 안타깝게도 인류 역사에서는 항상 나쁜 것과 자극적인 것들의 발전 속도가 빨랐다. AI를 이용한 인류 친화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를 더욱더 많이 소개할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