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일국
양일국

지난 9일 35만 방문객을 모으며 성공리에 끝난 구미 ‘라면축제’가 때 아닌 인종차별로 도마에 올랐다.

행사중 한 초대 가수가 만화 ‘아기공룡 둘리’(1987)의 등장인물 마이콜로 분장한 것이 문제가 됐다. 흑인을 비하했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 시대상이나 만화의 전후맥락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 억지다.

월간 ‘보물섬’에서 연재되던 만화 ‘아기공룡 둘리’는 1987년 10월 KBS 추석특선 TV만화로 첫 방영되면서 전국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가수 오승원이 부른 주제가와 ‘비누방울’ 등 세련된 OST는 현 4050세대의 유년기를 소환하는 걸작이었다.

마이콜은 작중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로, 흑인 같은 외모를 하고 있을 뿐 마씨 성을 가진 토종 한국인이다. 주인공 둘리, 도우너와 함께 ‘핵폭탄과 유도탄들’을 결성해 가요제에 출전, 자작곡 ‘라면과 구공탄’을 열창하고 심사위원단과 관객들의 야유를 받는다.

마이콜의 라면 찬가는 연탄불에 라면을 끓여먹던 1980년대 서민들의 일상을 노래한 것인데, 당시 가요계에서 비주류였던 록, 헤비메탈을 표방했다. 고단했던 그 시절을 "…하루에 열개라도 먹을 수 있어"라는 코믹한 가사로 녹여내고, 절망하지 않았다.

마이콜과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모지리’ 캐릭터들은 당시 꼬마들에게 우리 사회의 괴짜, 소수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줬다.

‘정치적 올바름’(PC)이 사람들의 입을 막는 문화권력이 된 요즘, 한쪽에선 영화나 드라마에 마이콜 같은 이가 없다고 비난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마이콜 분장을 했다고 손가락질하는 세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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