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이전 자유 막힌 북한, 청춘남녀 결혼조차 ‘행정 허가’에 발목 잡혀
농촌출신 제대군인, 국경도시 신의주 여성과 약혼했지만 ‘퇴거증명서’ 벽
국가가 인력 통제하며 사랑까지 통제…“돈이 없으면 결혼도 못하는 세상”
주민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북한에는 마음의 자유도 없다” 한탄
북한의 청춘 남녀가 결혼을 약속하고도 ‘퇴거증명서’ 한 장을 발급받지 못해 결혼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철저히 통제되는 북한의 현실 속에서 젊은 세대의 사랑과 결혼마저 국가의 행정 절차에 가로막히고 있다.
11일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황해남도 내륙 지역 출신의 남성 A씨와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 여성 B씨는 오는 12월 결혼식을 준비 중이었지만 A씨가 퇴거증명서를 떼지도, 새 거주지에 붙이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A씨는 신의주시 주둔 국경경비대에서 군 복무 중이던 3년 전 B씨를 만나 사랑을 키워왔다. 제대 후 약혼식까지 마친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지만, A씨가 농촌 출신이라는 이유로 B씨의 부모가 반대했다. A씨는 이에 신의주시로 거주지를 옮기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결혼 승낙을 받았다.
그러나 거주 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한 북한의 체제가 두 사람의 결혼을 가로막았다. 소식통은 “농촌에서 살려는 여성이 없어 결혼하면 남성이 도시 쪽으로 가는 게 보통이지만, 북한에선 마음대로 거주지를 옮길 수 없어 결혼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려면 기존 거주지에서 퇴거증명서를 발급받고, 새 거주지에 등록(‘붙이기’)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청년 인력을 농촌에 묶어두기 위해 퇴거증명서 발급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소식통은 “농촌은 젊은 노동력이 부족해 제대한 청년이 도시로 이동하는 걸 국가가 금지한다”며 “특히 국경 지역은 탈북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더욱 막혀 있다”고 전했다.
결국 제대군인 A씨는 고향을 떠날 수 없는 신세가 됐고, 결혼 상대인 B씨와 함께 사는 것은커녕 다시 이별의 위기에 놓였다. 그는 당원 신분이라 조직 생활을 이탈할 경우 ‘출당’ 처벌을 받을 수도 있어, 퇴거증명서를 받기 전까지는 고향을 벗어날 수 없다.
소식통은 “돈이 많아 뇌물을 충분히 바칠 수 있다면 퇴거증명서를 발급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요즘은 못 하게 하는 게 많아질수록 뇌물 액수만 커지고, 돈 없는 사람은 결혼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 내에서는 각종 행정 절차가 ‘돈으로만 움직이는 부패 구조’로 변질되어 있으며, 거주 이전 역시 예외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A씨의 결혼은 결국 무산 위기에 처했고, B씨의 부모는 “이럴 바엔 아예 그만두라”며 결혼을 재차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결혼식을 올린다 해도 함께 살 수 없으니 결국 따로 살아야 한다”며 “퇴거증명서가 나오지 않으면 사실상 부부로 살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어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우리나라에선 국경은커녕 같은 나라 안에서도 사랑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하겠느냐”며 “청춘 남녀가 퇴거증명서 때문에 갈라서야 한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국내 한 북한 전문가는 "결국 이 젊은 남녀의 사연은 북한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철저히 억압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북한 주민들은 ‘퇴거증명서’ 하나 없이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퇴거증명서 제도’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정치적 장치다. 결혼조차 허가받아야 하는 사회에서 청춘의 사랑은 체제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다"며 "북한에서는 사랑조차 ‘국가 허가 사항’이 된다. 한의 젊은 세대들이 더 이상 퇴거증명서 앞에서 꿈을 접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