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차 타려면 증명서부터?...편의 아닌 감시의 법제화

증명서 없으면 열차 탑승 금지…北 ‘통제 사회주의’의 전형
무보수노동·교양처벌까지…국제법 금지한 강제노동 합법화
인권 대신 통제 강화 北정권...법치 아닌 ‘법의 폭력’ 드러내

/챗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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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6월 1일부터 시행한 '철도려객수송법'은 표면적으로는 인민의 여행 편의와 여객수송의 현대화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조항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질적으로는 이동의 자유를 법적으로 봉쇄하고 주민을 감시·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국내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법은 총 6장 43개 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겉으로는 ‘사회주의 법치국가’를 표방하지만 실제 내용은 주민의 자유를 옥죄는 ‘법의 포장지’에 불과하다. 북한은 헌법 제75조에서 '공민은 거주, 여행의 자유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이 법을 통해 오히려 여행증명서 제도를 강화해 주민의 이동을 원천적으로 제한했다. 겉으로는 법제의 현대화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통제의 법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철도여객수송법에는 겉보기엔 현대적 요소들도 포함되어 있다. 여객 서비스, 안전, 보상, 취약계층 보호, 요금 규정의 명확화 등 일부 조항은 법적 예측가능성을 높인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여객 서비스 기준(제18조) ▲편의시설 운영(제19조) ▲안전 보장(제26조) ▲취약계층 배려(제24조) ▲차표 가격 규정(제11조) 등이 그렇다. 이는 북한이 국제규범을 의식하고 있다는 형식적 신호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항들은 법의 본질을 왜곡하는 독재체제의 외피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북한의 법률 체계는 여전히 조선노동당과 최고지도자에게 종속되어 있고, 법원 역시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 즉, 법이 통치의 수단으로 기능할 뿐, 주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도구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법의 핵심적 문제는 제27조 ‘증명서의 지참’ 조항이다. 내용은 '여객열차로 여행하려는 자는 공민증이나 여행증명서를 지참해야 하며, 해당 증명서가 없으면 열차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제12조와 '세계인권선언' 제13조가 명시한 이동의 자유를 정면으로 위반한다.

더욱이 북한의 여행증명서 제도는 구소련의 ‘프로피스카(Propiska)’와 유사하다. 특정 지역 이동을 국가가 승인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며, 승인 절차는 몇 주에서 몇 달까지 걸린다. 평양이나 국경 지역 여행증명서는 보위성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는 북한 주민의 일상적 이동을 사전 검열 대상으로 만들고, 자유를 허락이 아닌 ‘특권’으로 전락시킨다는 분석이다. 

또 제40조는 열차 위조, 질서 위반, 직무 방해 등을 이유로 '3개월 이하의 무보수노동 또는 노동교양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29호와 ICCPR 제8조가 명백히 금지하는 강제노동에 해당한다. 더 심각한 점은 이러한 처벌이 형사재판 없이 행정기관의 결정만으로 부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2024년 보고서에서 북한의 강제노동이 “깊이 제도화되어 있으며(deeply institutionalised)” 반인도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법은 주민을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 국가가 ‘노예화’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제32조 제8호는 '우리 식이 아닌 노래나 춤,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ICCPR 제19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즉, 북한은 개인의 문화적 표현조차 ‘국가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통제를 법으로 명시한 것이다. 더 나아가 제38~40조는 행정기관이 재판 없이 처벌을 집행할 수 있도록 규정, 무죄추정의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완전히 무시했다.

북한은 1981년 ICCPR을 비준한 당사국임에도, 철도여객수송법의 여러 조항은 이를 정면으로 위배한다. 이동 제한, 강제노동, 표현의 자유 제한, 재판 없는 처벌은 모두 국제인권규범의 핵심을 위반하는 조치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이미 북한의 이동 제한이 ‘인도에 반한 죄’로 간주될 수 있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결국 이번 법은 김정은 정권이 주민을 감시하기 위한 체계적 통제 장치임을 드러낸다. 국내 북한 전문가는 "'사회주의 법치국가'라는 미명 아래, 북한은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를 강화하며 주민의 자유를 법적으로 봉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전문가는 "북한의 철도여객수송법은 교통 편의가 아닌 통제의 정교화"라며 "열차 탑승조차 허가받아야 하는 현실은 북한 주민의 삶이 얼마나 철저히 감시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국제사회는 이제 형식적 법제화의 허울에 속지 말고, 북한에 이동의 자유 보장, 강제노동 폐지, 공정한 재판 보장, 표현의 자유 확대를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김정은 정권이 만들어낸 ‘철의 법’이 깨지고 북한 주민들이 증명서 없이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 그날이 바로 북한 인권 회복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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