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승
이양승

원화가치가 7개월 만에 달러당 1460원을 돌파했다.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 주에만 7조 원 넘는 주식을 팔아치우며 대거 빠져나갔고, 그 여파로 코스피 지수는 급락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반도체 중심으로 강한 매도세가 나타났다. 한국을 대표하는 회사들의 주식이 전체 순매도의 70% 이상을 차지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고, 주요국 통화 중 원화가치 하락 폭이 가장 컸다는 점도 심상치 않다. 단순한 환율 조정이 아니라, 위험스러운 ‘오버슈팅’(overshooting:상품이나 금융자산 시장가가 일시적 폭등 폭락) 징후일 수도 있다.

오버슈팅은 금융시장의 단기적 과잉 반응을 뜻한다. 실물시장보다 금융시장의 반응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정책 비일관성 또는 신뢰 문제가 발생하면 환율변동 폭도 급격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원화 약세는 단순한 경기지표나 금리 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근저에는 구조적 불안도 있다. 국제 자본시장 내에서 한국 체제의 항상성을 놓고 의심이 번진 결과일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한국의 정치적 환경이다. 지금처럼 반시장적 입법이 남발하면, 한국의 자유시장 체제 자체에 ‘불확실성’ 낙인이 찍히고 만다. 자본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가고, 환율이 오버슈팅 되는 이유다. 그 심각성은 원화가치의 일시적 급락보다 신뢰 붕괴의 속도에 있다. 환율은 일종의 ‘거울’이다. 정책 일관성·정부 신뢰성·정치 안정성 등을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한국의 제도적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금리정책은 정치적 압박 속에서 방향성을 잃고, 재정정책은 포퓰리즘 수단이 됐다. 정책이 일정 주기로 우왕좌왕 좌충우돌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시장의 ‘기대’가 고정될 수 없다. 환율 결정의 인자는 금리도 있지만 ‘기대’도 있다.

기대수준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게 바로 기대의 좌우 흔들림이다. 그 경우, 시장 내 불안감이 증폭되고 원화가치가 할인된다. 즉 기대치보다 더 낮아진다. 환율의 오버슈팅이 구조화되는 것이다. 설령 정책이 차후에 안정된다 하더라도 원화가치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제도 신뢰의 상처가 깊기 때문이다.

환율 급등이 수출기업에 유리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원화의 구조적 약세로 굳어질 경우, 수입물가 상승에 따라 인플레이션·구매력 감소·경기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 즉 환율의 오버슈팅이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동시에 초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기업들의 환위험 헤지(hedge)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의 근원은 제도 신뢰 훼손이다. 재정준칙이 느슨해지고, 정치적 이해에 따라 예산이 만들어지며, 반시장적 입법이 남발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를 ‘제도적 리스크’로 평가한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외교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오가며 리스크가 ‘뉴노멀’이 되고 있다. 명분의 장막 속에, 한국이 ‘규칙(rule) 기반’ 사회에서 ‘재량(discretion) 기반’ 사회로 넘어가고 그 끝은 ‘계획경제’일지도 모른다.

최근 원화가치 하락은 단순한 외화 수급문제 때문이 아니라 신뢰 훼손이 만들어낸 구조적 과잉반응일 수도 있다. 따라서 필요한 건 ‘언발에 오줌누기’ 식 정부 개입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명확히 하고, 정부는 재정규율을 복원하며, 국회는 밀어붙이기 식 입법폭거를 자제해야 한다.

물론 오버슈팅도 시장의 반응이다. 하지만 정책 불신이 일상화될 때, 오버슈팅은 ‘스카이로케팅’(skyrocketing)이 될 수 있다. 환율 ‘1500원’이 되면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국의 제도가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신호, 그리고 한국 정치 평판의 지수를 의미할 수도 있다. 신뢰 회복의 필요조건은 제도 복원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환율의 ‘오버슈팅’이 아니라 환율의 ‘스카이로케팅’ 시대를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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