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남정욱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정권 출범이 확정됐을 때 주변에 무조건 집을 사라고 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친구 둘이 살았다. 한 명은 전세로 거주하던 집을 샀고 한 명은 안 샀다(물론 내가 말해서 그랬을 리는 없고 고민하다 그 참에 결정했을 것이다).

정권이 끝날 무렵 둘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직장인이 10년 모아야 할 돈을 집 산 사람은 앉아서 벌었다. 더 중요한 건 계속 전세를 고집하던 친구는 너무 오른 그 집을 이제는 사지 못하게 됐다는 거다. 둘은 얼굴 마주치는 것도 피했다. 한 사람은 미안해서 한 사람은 너무 화가 나서. 집을 안 산 친구의 이유는 "집값이 내릴 것"이라고 정부가 말해서였다.

문재인은 임기 내내 부동산 문제만큼은 자신 있다고 공언했다. 좌파 정부의 특징 중 하나가 시장과 싸우려 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발생한다. 무주택자 그리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 세대다.

문재인의 시장과의 투쟁을 순서대로 보자. 일단 한 개인이 2주택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 다음으로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15억 원 초과 아파트를 담보로 한 주택담보대출을 ‘아예’ 금지시켰다.

전세는 다주택자가 임대시장에 자신의 잉여주택을 내놓은 것이다. 바꿔 말해 다주택자가 없으면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책 시행 결과 전세 물건이 마르고 가격이 올라갔다.

대출 규제는 무주택자들의 집 살 기회를 박탈했다. 특히 지속가능한 높은 연봉을 받는 젊은 층은 피눈물을 흘렸다. 원금을 갚아나가는 것은 물론 얼마든지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데 대출을 강제로 막아놓은 동안 집값은 계속 올랐다. 덕분에 문재인 정부 시절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은 저주받은 세대가 됐다.

하다하다 안 되니까 막판에는 세금 폭탄을 던졌다. 집주인은 배구에서 토스하듯 올라간 세금을 고스란히 전세금에 반영했고 이번에도 무주택자들이 유탄에 맞아 또 골병이 들었다.

시장을 다른 말로 하면 상식이다. 상식을 외면하고 정책을 펼치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재명 정부는 6월과 9월에 이어 10월에도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또’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와 초강력 금융 규제다.

대통령실은 시장과 실수요자 그리고 소비자의 반응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해보고 안 먹히면 또 바꾸겠다는 얘기다. 더 강도 높게. 다음으로 나올 시나리오는 빤하다. 세금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납세자의 부담능력에 맞게 공평한 과세를 해야 한다는 응능부담(ability-to-pay) 원칙은 다주택뿐만 아니라 고가의 1주택 소유자에게도 적용되며, 집값이 50억 원이면 1년에 5천만 원씩 세금을 내야 할 거라고 예고편을 틀었다. 벌써부터 일부 좌파 매체는 보유세를 ‘화끈하게’ 올리라며 군불을 때고 있다.

정부만 싸우는 게 아니다. 범여권 의원 열 명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3년씩 3회, 최대 9년까지 전세 거주가 가능해진다. 임차인에게 행복한 소식일까.

예측 가능한 경우는 수는 둘이다. 하나는 임대인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거다. 그 결과 신혼부부 등 신규로 시장에 진입하는 임차인들은 전세 주택을 구하지 못하고 고가의 월세와 만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임대인이 작정하고 9년 뒤 시세를 고려해 보증금을 수직 인상하는 거다. 전자에 비해 현실화 비율은 떨어지겠지만 역시나 임차인에게는 생살 떼어 가는 고통이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설탕 바른 말로 국민을 기만하고 무리한 정책을 펼치는 동안 전 국민이 고통 받고 무주택자의 멀어진 주택 마련의 꿈은 ‘확실한 불가능’으로 귀착된다. 2017년 집 안 산 친구가 이번에는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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