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남정욱

대중문화 평론을 한다면서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하나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같아 고른 게 뉴진스였다. 너무 유명해도 좀 그렇고(가령 블랙 핑크) 너무 존재감이 없어도 곤란한데 데뷔 시기나 인기 등이 딱 적당했다.

좋아하기로 했으니 이제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야 할 차례다(앞뒤가 뒤바뀐 것 같지만 살다보면 의외로 흔하게 있는 일이다).

일단 칼 군무를 안 추어서 좋았다. 실은 이게 더 어렵다. 멤버들 전체가 딱딱 각이 나오는 것보다 그냥 자유롭게 각자 뛰어노는 것 같아 보이는 게 진짜 고된 연습의 결과다.

들어보니 음악도 괜찮았다. 미국 클럽에서 유행하는 저지 클럽, 드럼 앤 베이스 같은 비트가 들어간 곡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게 아마도 글로벌한 인기몰이가 가능했던 이유였지 싶다. 쉽게 말해 춤추는 데 특화된 노래와 비트라는 얘기다. 실제로 2023년 8월 뉴진스가 출연했던 롤라팔루자 페스티벌을 보면 미국 관중들 좋아 죽는다. 데뷔한 지 불과 1년 만에 써내려간 엄청난 성공신화였다.

2024년 4월 엽기적인 기자회견이 펼쳐진다. 뉴진스의 엄마를 자처하던 민희진이 뉴진스의 소속사인 어도어를 모(母)회사인 하이브가 탈취하려든다며 전면적인 공세에 나선 것이다. 통상 기자회견과 달리 민희진은 캐주얼한 복장에 야구 모자를 쓰고 나와 ‘개저씨들’, ‘다 덤벼’를 외치며 하이브를 맹비난했다.

누가 봐도 신진(新進)과 구태(舊態)의 충돌이었다. 가뜩이나 약자에게 후한 한국사회다. 사실 관계를 떠나서 사람들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희진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회견에 대해 하이브는 납득 가능한 답변을 했고 민희진의 주장과 논리는 초라하게 구겨졌다.

이 싸움에 뉴진스가 난데없이 참전(參戰)한다. 황당했다. 경영권 다툼에 대체 왜 아티스트가 끼어들지? 이후 뉴진스의 행보는 실망스러웠다. 칙칙한 복장에 상갓집 분위기로 라이브 방송을 하는가 하면 환노위 국정감사에는 참고인으로 나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더니 급기야 2024년 11월 29일로 어도어와 전속계약 해지를 하겠다며 ‘일방적’으로 선언해 버린 것이다.

아이돌 그룹 하나 키우는 데 들어가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뉴진스 역시 2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공한다는 보장 당연히 없다. 되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쪽박이다. 이걸 감수하고 거금을 쏟아 부었는데 막상 성공하자 아티스트가 계약 무효를 주장한다? 결국 어도어는 뉴진스에 계약 유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다. 이어 독자 활동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는데 뉴진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다음날 미국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법원 결정에 실망했으며 한국이 자기들을 혁명가로 만들려고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인터뷰 다음 날에는 ‘불법’으로 홍콩에서 무대에 올랐다. 법원 판결에 대한 무(無)존중으로 선을 제대로 넘은 것이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알고 보니 대책 없는 아이들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했다. 뉴진스 주변에는 ‘좋은’ 어른이 없구나. 상식과 책임을 말해주기는커녕 죄다 부추기는 인간들뿐이구나.

지난 10월 30일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계약 유효 판결에 뉴진스는 또 폭탄을 던졌다. 판결 직후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판사는 판결문을 무려 40분이나 읽었다. 다시는 이런 무책임한 사건이 없도록 하자는 사회적 메시지인 동시에 판결문을 듣는 동안 피고에게 반성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바로 항소 운운 했으니 컴백은 이제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아이돌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며칠 전 멤버들이 항소 대신 어도어에 복귀 의사를 표시했다는 소식이다. 모쪼록 진짜 반성 끝에 나온 결정이었기를 빈다. 판결문에는 소송 원피고도 아닌 민희진의 이름이 100번 넘게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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