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규제포획의 나라다. 조선시대 탐관오리의 수탈이 체계화된 게 규제포획이라고 보면 쉽다. 빈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부자를 위하는 규제인 것이다. 다주택 규제를 역설해온 이들의 ‘내로남불’이 볼 만하다.
미시적으로 부동산은 한국 경제의 급소다. 잘못 누르면 나라 전체가 자지러진다. 거시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블랙홀이다. 자원을 모두 빨아들인다. 한국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산주의’다. 바로 부동산 자산주의다. 자본가를 배격하는 좌파가 부동산 자산을 더 탐닉한다. 인지부조화다. 앞에서 욕하고 뒤에서 좋아하면 그건 어딘가 이상한 것이다.
사실 투자건 투기건 자유다. 그리고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다. 문제는 규제포획이다. 방법은 판을 흔드는 것이다. 실은 정책보다 정보가 더 중요하다. 규제는 즉각 시장을 흔든다. 하지만 규제정보는 결코 동시적이지 않다. 일반인들은 언론을 통해 그 정보를 듣지만 누군가는 규제변화의 방향을 미리 접할 수 있다. 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관료·정치인, 그 주변인들이다. 정보 비대칭이 자산증식 기회가 되는 것이다.
정보는 ‘돈’ 이다. 정책이 공식화되기도 전에 해당 지역의 땅 거래는 모두 끝난다. 대중이 뉴스를 들었을 땐 이미 ‘비정상 과열’ 상태다. 누군가 한국을 부동산 약탈 국가라고 표현한 적 있는데, 그 약탈 메커니즘이 바로 규제포획이다. 시장 왜곡 방지를 위한 규제당국이 오히려 규제를 통해 순식간에 거대 사익을 챙긴다.
규제자와 피규제자가 하나다. 이해관계가 달라 보이지만 알고보면 이해관계가 같다. 서로 이윤추구를 돕는 격이다. 규제는 형식이고, 내용은 자원 재배분이다. 그에 따라 새로운 자산계급이 출현한다. 이른바 강남좌파다. 그들은 정책 변화를 파악하고 미리 대응할 수 있는 정보 우위를 지닌다. 그들 부의 근원은 정보와 네트워크다. 정치권과 관료조직과 연계해 정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책이 중립적이지 않은 이유다.
한국 부동산 규제의 역설이 여기에 있다. 규제강화가 부자들의 자산증식 수단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수도권 초집중화로 인해 지역 간 자산격차가 심화된 상태다. 한국에서 부의 기준은 어디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느냐다. 거북이가 앞서 뛰는 아킬레우스를 따라잡을 수 없듯 지방의 자산가치는 수도권의 자산가치를 따라잡을 수 없다. 공간 양극화가 경제적 불평등이다. 그 사실을 넘겨짚는 한국 좌파는 비겁하거나 불평등을 심화시키려는 음모론자들이다.
한국 정책엔 패턴이 존재한다.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 ‘주거 안정’을 이유로 부동산 시장에 규제를 가한다. 판을 흔드는 격이다. 그 결과, 부자들이 더 큰 부자가 된다. 그 부자들은 대개 정파적 이해를 갖는 이들이다. 규제를 통해 주거 빈민들이 더 양산된다. 자산기반 투표이론에 따르면, 주거 상태가 불안한 이들은 정치적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좌파 정책의 피해자들이 역설적이게도 좌파 정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경우다.
한국 정책은 정치다. 최선(first-best)보다 차선(second-best)를 전제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먼저 챙긴다. 그러니 사람들은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 정책은 점차 규제포획을 통한 누군가의 ‘자산증식 체제’로 수렴하고 있다. 규제 자체가 정치편향적 부자들에게 더 큰 부를 몰아주는 ‘맞춤형’ 메커니즘이 되어버린 것이다. 부동산 정책은 더욱 그렇다. 정부의 정책 목표에 진짜 무주택자와 실수요자가 있는지 묻고 싶다. 삶의 질이나 주거안정보다는 자산증식과 이해관계 방어가 더 큰 정책 목표로 보인다.
규제포획 방지를 위해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 하나는 사전 예고제다. 즉 정책 변동과 규제는 그 정보를 미리 공개해 시장 내 자동조정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이해상충 차단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그 정책과 어떤 이해관계를 갖는지 그 정보를 미리 공개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규제를 가해놓고 뒤늦게 그 정책 관련자들의 ‘내로남불’이 불거지는 건 허무 개그일 뿐이다. 규제와 정보가 소수를 위한 자산증식 수단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공정한 기회로 작동할 때 사회 전체 후생이 증가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