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규
김완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관세 전쟁을 통해 서로 치고 받으며(tit for tat) 치킨게임을 벌여온 미·중 간 글로벌 패권경쟁이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일단 무승부로 끝났다.

미·중 정상은 지난 10월 30일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이후 6년 4개월 만에 만나 100분간 회담을 했다. 트럼프는 모두발언에서 "시진핑은 매우 기품있고 존경받는 중국 주석"이라며 "오랜 기간 내 친구였던 이와 함께 해 영광"이라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시진핑은 "중국은 미국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다. 중국의 발전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비전과 함께 간다"고 화답했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공동성명이나 기자회견이 없어 자세한 결과가 밝혀지지 않았으나, 트럼프의 언급과 중국 상무부의 발표문 등을 볼 때 양 정상은 경제와 무역문제 논의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1년 유예와 합성마약 펜타닐의 미국 유입 차단 협력, 대두 등 농산물 무역 확대 등에 동의하고, 미국은 중국에 부과해온 관세를 10%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또 내년 4월 트럼프가 중국을 방문하고 시진핑도 미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 질문에 "이번 회담은 10점 만점에 12점을 주겠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중국 신화통신은 "미·중 양국은 큰 그림을 보고 협력이 가져다 주는 장기적 이익을 중시해야 하고 상호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시진핑의 언급 등을 보도하고 향후 양국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양국 간에는 이번 회담 결과를 무산시킬 수 있는 장애물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1년 유예했지만 희토류 수출허가증 발급 불요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미국도 틱톡(TikTok)의 미국 사업권 매각, 차세대 인공지능 반도체 칩 중국 판매, 11월 중순 만료되는 초고율관세 유예 기간 재연장 문제 등 양국간 민감한 기술 및 관세 현안에 대해 불분명한 입장이다.

게다가 양국이 가장 민감한 대만문제와 중국의 러시아 원유 구입, 남중국해 내 중국의 불법행위, 인권문제 등은 논의에서 제외했다. 이 문제들은 언제든 양국관계의 분열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관계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잠정 휴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충돌을 피하고 거래를 통한 잠정 휴전에 나선 것은 각자 처한 정치적 입지와 전략에 기인한다.

트럼프로서는 1기 정부 당시 중국과의 대립이 큰 대가를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했다. 1기 당시 트럼프는 미국의 전통적인 대중(對中) 개입 정책, 즉 중국과의 경제 통합이 중국 민주화와 개방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 하에 추진된 개입 정책을 포기하고 중국과 무역전쟁을 통한 대립 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를 최소화하고 희토류 확보와 펜타닐 유입 차단 등 미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거래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에 따르고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이번 회담을 통해 개인적으로도 각각 챙길 것들을 챙겼다. 트럼프는 미국의 제일 경쟁국인 중국을 협상으로 이끌어내 협상가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중국의 대두 수입 재개 등으로 국내 정치적 성과도 거두었다. 시진핑은 지난 9월 3일 전승절 행사 때 푸틴과 김정은 등을 초청해 화려한 행사를 열었다. 이번에는 미국을 마주해 강력한 글로벌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등 정치적 홍보효과를 거두었다. 특히 지속적인 경제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시진핑은 국내 문제에 더 집중하기 위해 미국과의 무역 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중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 결과를 기반으로 다음 무역전쟁 준비에 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잠재돼 있는 분열요인들을 어떻게 각자에게 유리하게 처리해 나가느냐가 최대 과제가 될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미·중 관계는 또 다시 요동을 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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