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한미 양국은 10월 29일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간 정상회담 최종 결과의 팩트시트(factsheet, 공동설명자료)를 발표했다.
발표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문은 양국간 해양 및 원자력 분야 파트너십 발전으로, 미국의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이하 핵잠) 건조 승인과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지지 그리고 미국 조선산업 확대에 대한 한국의 기여 공약이다.
그동안 국내외 일각에서는 한국의 핵잠 건조와 우라늄 농축 승인 등에 대해 반대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한국의 핵잠 보유와 우라늄 농축으로 역내 군비경쟁이 심화되고 비확산체제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데다 미국 내 정치상황 등 많은 난관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지금 세계는 우크라이나전에서 고전하고 있는 푸틴의 핵위협 증대와 이에 대응한 트럼프의 핵실험 실시 지시, 그리고 중국과 북한의 핵전력 증강 등 냉전종식 이후 새로운 핵경쟁 시대로 돌입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의 핵잠 보유와 우라늄 농축은 한미동맹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키는 인도·태평양지역의 지정학적 분수령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핵잠을 보유할 경우 역내 팽창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국 견제가 가능해진다. 2021년 호주에 핵잠 제공을 통해 결성한 오커스(미국·영국·호주 3자 동맹)와 더불어 중국을 견제하는 복합·다중적 동맹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인도·태평양지역 안보구조를 유리하게 변경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핵잠 보유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함으로써 미국의 방위 부담을 경감시킬 뿐 아니라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미국과 동등한 작전을 할 수 있게 된다. 트럼프 정부가 목표로 하는 동맹의 현대화를 이루는 한 방편이 되는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핵잠을 보유함으로써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억지력을 구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양에서의 경계력 증진과 한반도를 넘어 힘을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동북아 및 글로벌 안보 구조 내에서 전략적 입지가 향상되는 기회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핵잠 건조와 대미 조선산업 지원으로 한국의 우수한 선박 건조능력이 미국의 산업역량 부활에 기여하는 등 한미 양국의 방위산업 융합이 가능하게 된다. 한미동맹이 안보를 넘어 경제가 융합하는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본격 진입하는 것이다. 나아가 세계 첨단 군사강국으로의 한 단계 도약을 통해 인도·태평양에서 중추국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핵잠 건조는 한국에게 유리한 지정학적 파장을 가져오고 있다. 무엇보다 핵무장을 배경으로 한국을 협박해온 북한 김정은에게 안규백 국방장관 말대로 잠을 못 자게 만드는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김정은은 단기적으로는 핵무력을 증강하면서 강력 대응할 것이나 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의 셈법이 복잡해짐으로써 전향적으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핵잠 보유를 한국이 미국의 중국 견제에 동참한다는 보다 확실한 신호로 볼 것이다. 중국은 한국의 핵잠 건조에 대해 외면적으로는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 양국의 핵 비확산 의무 이행과 지역 평화와 안정을 희망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관영매체들을 통해 한국의 핵잠 건조 승인은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광범위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서해와 동중국해에서 반(反)잠함 작전 및 잠함순찰 강화와 함께 러시아와의 해저 감시 및 합동 해상훈련 강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한국의 핵잠 보유가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해양 영향력 확대에 제동을 걸게 되면서 중국의 전략적 우위에 큰 타격을 줄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조선시대처럼 속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진핑에게 한국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사건이 될 것이다.
일본은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7일 대만 유사시 집단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일본 총리 최초로 언급했다. 이어 고이지미 방위상이 12일 한국의 핵잠 도입과 관련 일본도 핵잠 도입을 논의할 것임을 밝히는 등 중국 견제를 위한 억지력 강화에 적극 나설 뜻을 내비쳤다.
한국의 핵잠 보유는 인도·태평양지역 안보판을 뒤흔들고 있다. 한국이 게임체인저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는 북한과 중국의 거센 반발이라는 도전에 직면하는 동시에 인도·태평양지역뿐만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이 새롭게 중추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의 핵잠 보유 실현은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격랑을 헤치고 나아갈 때 대한민국 앞에는 해방 후 80년간 약소국이라는 굴레에 묶여온 시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운 무대가 펼쳐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