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규
김완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계속하는 가운데, 러시아 전투기의 잇따른 유럽연합(NATO) 영공 침범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0일 러시아 드론들이 폴란드 영공을 14일에는 루마니아 영공을, 19일에는 러시아 MIG-31 전투기 3대가 에스토니아 영공을 침범했다. 이에 나토는 전투기를 출격시켜 감시에 나섰다. 동시에 회원국이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 나토 전체 회원국이 협의할 수 있도록 규정한 나토 협약 4조를 발동,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마르크 뤼테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는 회원국들 영토의 1인치도 수호할 결의가 되어있다"고 단호한 의지를 보였고,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러시아 항공기의 영공 침범은 의도적 도발로서 푸틴이 서방의 결의를 시험하는 것"이라며 경계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트럼프 미 대통령은 "러시아 드론의 폴란드 영공 침범은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 나는 그러한 상황에 관련되는 것에 행복하지 않다"고 언급하는 등 미국과는 관계없는 일로 간주했다. 이는 그동안 러시아에 대해 온갖 제재를 가하겠다고 말만 하고 이행하지 않은 트럼프의 대(對)러 유화적 입장을 다시 한번 나타낸 것이다.

그러던 트럼프가 지난 23일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후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평화협정을 타결하기 위해 영토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던 기존 주장 대신 ‘우크라이나가 침략당한 모든 영토를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는 종이 호랑이’이고 유럽국가들이 나토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의 전투기를 격추할 권리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간 취해왔던 친러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트럼프는 이어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지금이야말로 우크라이나가 행동에 나설 때"라며 " 나토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계속 무기를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젤렌스키와의 회담에서 미국의 원조를 원하는 젤렌스키에게 "당신은 카드가 없다"면서 모욕을 줬다. 4월 3일 전 세계에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도 러시아는 제외하는 등 특혜를 베풀었다. 8월 15일 푸틴과의 알래스카 정상회담에서 푸틴의 입장을 수용하는 등 푸틴에 레드 카펫을 깔아주었다.

이처럼 젤렌스키를 박대하고 푸틴 편을 들어왔던 트럼프가 갑자기 180도 돌변한 것이다. 이는 푸틴-젤렌스키 정상회담 개최 등 푸틴과 합의한 평화협정 노력에 푸틴이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는 데 실망한 트럼프의 반격이다. 즉 스트롱맨과 개인적 친분을 쌓아 문제를 풀어가는 ‘거래의 기술’이 통하지 않자 ‘미친놈 전술’로 전환한 것이다.

반면 푸틴의 속내는 이렇다. 알래스카 회담을 통해 트럼프가 계속되고 있는 분쟁에 마음 내키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수십억 달러 지원할 마음도 없으며 미군이 나토 평화유지군에 참여할 생각도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지속적인 공세를 펼쳤다. 구(舊)소련 영토를 전부 회복해 러시아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야망을 가진 푸틴은 나토와 트럼프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러시아와 인접한 나토 동부지역 국가들 영공을 침범하는 도발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4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린궁 대변인을 통해 "국익과 목표 달성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서 "러시아는 종이 호랑이가 아니라 진짜 곰"이라고 했다. 또 유럽국가들의 영공 침범 주장을 "히스테리"라고 일축하는 등 공세를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

이처럼 지금 유럽에서는 트럼프의 ‘미친놈 전술’과 푸틴의 ‘배째라 전술’이 부딪치면서 치열한 두뇌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국가들 사이에는 트럼프의 태도 변화에 환영과 회의적 시각이 병존하고 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등은 "트럼프가 언급한 모든 발언이 옳다"면서 적극 환영하고 있으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일부 지도자들은 "트럼프 발언이 옳으나 트럼프는 오늘 말과 내일 말이 다른 사람"이라 언제 입장을 또 바꿀지 모른다면서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트럼프가 나토에 계속 무기를 공급할 것이라는 말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미국은 뒤에 앉아 지원해줄 테니 "유럽 일은 유럽이 알아서 하라"는 역외균형전략, 즉 미국의 신(新)고립주의 속내를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트럼프의 변덕성과 역외균형전략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친분을 계속 강조하고, 특히 현재 내부 검토중인 국방전략서에 한국과 대만 방어에 미국 개입을 피하는 신(新)애치슨 라인이 포함될 수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역외균형전략이 한반도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유럽에서 트럼프의 행보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사전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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