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화스와프 만으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감당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틱톡에 관한 행정 명령에 서명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한·미 통화스와프 만으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감당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틱톡에 관한 행정 명령에 서명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고 있는 3500억 달러(494조 원) 규모의 직접 투자는 무제한 통화스와프 문제와 무관하게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 자체도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설령 체결되더라도 외환보유고의 84%에 해당되는 국부 유출과 그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28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5(현지시간) ·미 무역 합의에 따른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에 대해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못 박았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투자 규모를 5500억 달러까지 늘려야 한다고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 충격을 막기 위해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미국이 단순 보증이나 대출이 아닌 현금 직접투자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현금이 단기간에 빠져나갈 경우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필요조건"이라며 "그 문제가 해결 안 되면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강조하며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공식 협상 의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통화스와프 체결 가능성이 높지 않다. 미국은 과거 경제 위기 상황을 제외하고 비기축통화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은 전례가 없다. 이미 우리 측의 제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도 알려졌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 무제한·상시 통화스와프를 해주면 미국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에도 문을 열어줘야 하기 때문에 통화스와프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설령 우리 정부의 요청대로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체결된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의 패닉을 막는 수단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3500억 달러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8월 말 4163억 달러)84%, 한 해 예산(6733000억 원)73.4%, 국내총생산(GDP)의 약 19%에 달한다.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막대한 규모의 현금이 빠져나가면 금융시장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허준영 교수는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있으면 환율 절하 폭은 좀 덜하겠지만, 있다고 해서 원화 절하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3500억 달러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국부가 유출되는 것은 물론,대규모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팔면 시중에 풀려있던 원화가 흡수돼 금리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이는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위축시켜 실물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준다. 또 통화스와프는 만기가 되면 이자를 포함해 갚아야 하는 대출이기 때문에 이 역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 공동화역시 문제로 꼽힌다.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곧 국내에 지어져야 할 공장이 미국에 들어선다는 의미다. 허 교수는 "어떤 상황이건 간에 우리나라 제조업의 공동화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실물 부분에서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의 요구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태봉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와 여건 대비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국에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통화스와프를 체결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에따라 투자를 장기간에 걸쳐 분할 집행하는 방식 등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김 교수는 "미국이 요구한 규모의 직접투자는 불가능하다""트럼프 대통령의 치적을 만들어주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왹교적 협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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