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5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쿰푸르 국제컨벤션센터에서 2025 아세안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까으 끔 후은 아세안 사무총장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5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쿰푸르 국제컨벤션센터에서 2025 아세안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까으 끔 후은 아세안 사무총장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

한미 관세 협상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충형 국민의힘 대변인은 27일 논평을 내고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후 통상 외교가 더 꼬이고 있다"며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협상이 너무 잘 됐다.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던 정부의 관세 협상은 대국민 사기극이라 부를 만큼 우리 경제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대통령이 호언장담하고 막대한 돈을 퍼붓겠다 해놓고도 통상이 타결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국가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관세 협상마저도 보여주기식 쇼로 국민의 눈을 가리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 대변인은 또 "트럼프 대통령의 ‘선불’ 발언으로 상황은 더 뒤숭숭해졌다"고 진단하며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둘러싼 이견만 더 부각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대미 투자의 방향성과 성격에 대해 국민에게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세부 협상이 열릴 때마다, 미국 정부의 입장이 나올 때마다 말이 달라지고 있다"며 "협상 과정에서 명확한 전략과 원칙을 보여주지 못한 채 흔들리는 정부를 국민은 신뢰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5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면담을 하고 돌아온 뒤 취재진과 만나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에서 미국 측에 상업적 합리성과 실현 가능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여 본부장은 "그리어 대표와 현재 한미 협의 동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며 "상업적 합리성을 보장하고 특히 실현 가능한 방식으로 (대미 투자 패키지가)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결국 한미 양국의 국익에도 부합한다는 부분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양국 간 극명한 이견을 보여온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 및 운영 방법에 대해 협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여 본부장은 지난 7월 30일(현지 시간)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이후 후속 조치에 진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큰 틀의 합의 후에 구체화해야 할 부분에 대해 계속 협의를 해왔다. 그런 측면에서 진전이 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는 것을 계기로 한미 협상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여 본부장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시한에 쫓겨 내용을 희생한다거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합의한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정치권 안팎에서 "기업들은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 가는데 어느 세월에 협상을 타결하려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지난 8월 25일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이 관세 협상에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도대체 정상회담에서 무얼 의논하고, 어떤 성과를 끌어냈는지 확실한 건 하나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계에서는 애당초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합의한 것부터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우려하는 바와 같이 단기간에 3500억 달러를 지분투자 방식으로 할 경우 외환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물론 정부가 미국에 요구하는 무제한 통화 스와프에 미국이 응한다 해도 투자 규모가 한국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다는 점에서다.

야권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관세 협상은 차기 정부 몫이라며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최상목 경제부총리 등의 대미 협상을 막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했고, 그 탓에 일본과 유럽연합(EU)의 대규모 대미 투자의 선례가 만들어진 속에서 7월 말까지의 시한에 쫓겨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라는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미 간 대미 투자금 조성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관세 협상 타결이 한없이 늘어지며 기업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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