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배우 황정민이 보모 할머니가 된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얘기다. 2022년 국내 초연되어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이 작품이 황정민·정성화·정상훈 호화 라인업으로 무장하고 돌아온다. 특히 10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서는 황정민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관객 입장에서는 원작 영화에 출연했던 로빈 윌리엄스가 새삼 그리워지기도 한다.
스크린에서 브로드웨이로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로빈 윌리엄스 대표작인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로빈 윌리엄스(1951-2014)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카르페 디엠"으로 유명하지만 연기로는 이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경제적 문제에 무심한 철부지 남편 때문에 실질적으로 세 아이를 부양해야 했던 미란다(샐리 필드)가 지쳐 이혼을 통보하면서 시작된다. 아이들을 주 1회만 만날 수 있게 된 다니엘은 우연히 미란다의 도우미 구인 광고를 보고 분장사인 남동생 도움으로 할머니로 변신,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되어 취직을 한다. 집안일도 하고 아이들도 돌보는 과정에서 연이은 실수, 황당한 사건들이 줄줄이 벌어진다.
1993년 개봉한 영화는 2500만 달러 제작비로 4억4130만 달러 수익을 올리며 그해 두 번째 높은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제 66회 아카데미 분장상, 제 51회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첫 막을 올린 것은 2020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다. 한국에서는 영국 웨스트엔드보다 1년 빠른 2022년 초연됐다. 국내판은 원작의 원형을 살리는 데 충실하면서도 국내 정서에 맞도록 수정·각색이 가능한 ‘논 레플리카’ 버전으로 완성됐다. 영화 ‘데드풀’ ‘스파이더맨’ 등에 참여했던 황석희가 번역에 힘을 보태 한국형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만들어냈다.
신입 황정민·정상훈에 경력직 정성화
2022년 초연에는 임창정·정성화·양준모가 트리플 캐스팅 됐다. 2025년 시즌에는 정성화를 경력직으로 두고, 황정민과 정상훈이 신참으로 가세한다. 말이 신참이지,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는 배우들이다.
영화계에서는 ‘베테랑’ 등으로 이미 천만 배우 명성을 쌓고 있지만 황정민은 자신의 출발점인 무대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연극 ‘맥베스’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전 회차 전석 매진시겼다. 그는 "배우로서 스스로 숨통을 틔우기 위해 연극을 빼놓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번 뮤지컬 출연은 ‘오케피’ 이후 10년 만이다. 제작 발표회에서 그는 "세대가 공통으로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의 주제가 좋았다"며 "코미디 연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정성화의 연기를 길라잡이로 삼아 연기했다"고 했다.
유일한 경력직인 정성화는 "무대에 나오면 화장실을 다녀올 수 없을 정도로 공연 내내 바쁜 캐릭터다. 춤도 추고 대사량도 엄청 많고 탭댄스도 해야 되는, 극한의 난이도를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면서도 "지난번에 했던 사람으로서 다른 배우들에게 팁을 주는 정도였고 코미디는 각자 살리는 포인트가 다르다. 3인 3색 공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상훈은 유쾌함과 진심이 공존하는 다니엘과 가장 찰떡으로 보인다. 신동엽의 유튜브 ‘짠한 형’에 출연한 그는 "로빈 윌리엄스를 닮고 싶어서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20회 넘는 퀵체인지가 관람 포인트
다니엘에서 다웃파이어로 변신하는 장면은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다. 마치 변검 같은 느낌. 가발·마스크·특수분장 수트까지 퀵 체인지 하는 데 허락된 시간은 단 8초다.
영화에서는 윌리엄스가 미처 다웃파이어로 변신을 못한 상태라거나 자신의 처지를 깜박 잊고 굵은 남자 목소리를 내는 장면 등이 등장한다. 관객들이 마음껏 박수치고 웃는 포인트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실제로 분장을 다 마치지 못해 이런 일이 혹여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코미디가 될 수 있겠다.
90년대 배경에서 2020년대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현지화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에서 미란다가 이름을 물어보자 다니엘은 버벅거리다가 마침 옆에 있던 신문의 헤드라인 ‘Police Doubt Fire Was Accidental’(경찰, 실화 가능성에 의심)을 보고 다웃파이어라는 이름을 댄다. 뮤지컬 국내 버전에서는 지나가는 커플이 "잘생기면 다 오빠야"라고 말하는 것에서 따온다.
영화 속 90년대 다웃파이어가 요리책을 보며 요리를 했다면, 2020년대 뮤지컬 속 다웃파이어는 고든 램지, 백종원을 연상케 하는 유튜버 콘텐츠를 보며 요리한다. 영화 속에서 TV를 보던 아이들은 이제 아이패드를 사용한다. 또 할머니 분장을 하며 부르는 넘버 속에 ‘오스카의 윤여정’이라는 가사를 넣기도 한다.
막은 올랐다, 남은 건 관객 평가뿐
2022년 초연 당시 일부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한 후기에서는 "웃음을 노린 나머지 감동이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용이 무난하고 예측 가능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원작 영화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스토리의 뻔함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또 이혼을 너무 가볍게 다뤘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러한 지적들은 미국이나 영국 현지 공연을 본 관객들에 의해서도 꾸준히 제기됐던 부분이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이번 시즌에서 이런 아쉬움들을 보완할 것이라 다짐하고 있다. 특히 황정민·정성화·정상훈 등 연기파 배우들이 웃음과 감동의 균형을 잘 맞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무대 전환부터 세트 디테일과 의상, 분장 등을 업그레이드하고 다웃파이어의 변신 장면을 더욱 정교하게 구현할 예정이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27일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한다.
2023년,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는 개봉 30주년을 기념하며 ‘비즈니스 인사이더’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속편 제작 논의가 2014년 시작됐다고 했다. 당시 대본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며, 이를 본 로빈 윌리엄스는 "이번에도 수트를 자주 입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해 윌리엄스가 갑자기 생을 마감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에서 볼 수 없게 됐다. 감독은 윌리엄스가 애드립으로 촬영한 장면이 정말 많았다며 그 필름이 담긴 상자가 972개 있다고 했다. 그는 영화에 삭제된 장면, 비하인드 영상을 모아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