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 지난 6월 공개 이후 41개국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기록했으며, 수록곡은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영화 곳곳에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풍습이 세밀하게 자리잡고 있어 한국인들에게는 공감대를, 외국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컷. /제작사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컷. /제작사

K-컬처 재해석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액션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K-팝 스타 루미·미라·조이로 구성된 인기 걸그룹 헌트릭스가 무대 밖에서는 악마를 사냥하는 데몬 헌터스로 활약한다. 그 대척점에는 신예 보이그룹인 사자보이스가 있다. 이들은 실은 악령 귀신들이다.

영화는 예로부터 무당들이 노래를 통해 악령을 물리쳐 왔으며, 그것이 K-팝으로 발전했다는 스토리라인을 기본으로 한다. 전통과 현대, 음악과 이야기, 무당과 아이돌이라는 독특한 조합에 도깨비·귀신·저승사자 같은 K-귀신을 정교하게 융합시켜 ‘K-오컬트’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계 캐나다인인 매기 강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애니메이션 일을 시작할 때부터 항상 한국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가장 처음 떠오른 것이 한국의 풍부한 신화였다"고 밝혔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몬스터 호텔’로 잘 알려진 크리스 애펄헐즈가 공동연출로 나섰고 소니 픽처스가 제작을 담당했다.

강 감독의 실험은 성공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 순위 분석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케데헌’은 지난 6월 20일 공개 이후 7월 2일 기준 한국을 비롯해 미국·대만·태국·포르투갈 등 41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기록했다. 또 공개된 지 몇 주 만에 엄청난 양의 팬아트가 쏟아지는가 하면 틱톡, 유튜브에는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스 춤을 따라하는 챌린지가 홍수를 이룬다. 일부 영상들은 수억 건의 조회수를 기록, 가히 신드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컷. /제작사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컷. /제작사

빌보드 차트 K-팝 신기록

OST 성공도 두드러진다. SM 출신 작곡가 EJAE(김은재)와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 등 K-팝 뮤지션들이 참여해 작곡 완성도를 높였다. 그 결과 7월 15일 현재 미국 빌보드 싱글 인기 차트 핫100에 8곡이 동시 진입했다. 이는 2020년 7곡을 올린 BTS를 넘어선 K-팝 신기록이다.

특히 ‘골든’은 지난 주 대비 13계단을 올라 6위, ‘유어 아이돌’(16위), ‘하우 이츠 던’(29위) 등도 각각 14-15계단 상승했다. OST 앨범도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1단계 오른 2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는 ‘골든’을 2026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출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만약 후보에 오르면 2022년 ‘엔칸토: 마법의 세계’ 이후 두 번째로 아카데미에 애니메이션 OST가 후보에 오르는 역사를 쓰게 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컷. /제작사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컷. /제작사

서태지와 H.O.T.노래가 토양

‘케데헌’의 제작 기간은 7년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사실 초기 설정이 이렇지 않았으며 K-팝 요소가 더해진 것도 나중이었다고 한다.

영화를 쓰고 연출한 강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다섯 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지만 여름방학마다 한국에 돌아와 사촌들과 함께 지냈다. 서태지와 H.O.T. 노래를 들으며 자라 한국 문화에 익숙하다. 데몬 헌터스의 정체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을 찾던 과정에서 K-팝을 떠올렸다."

영화의 결정적 아이디어였다. 기본 스토리에 한국인이 만들고 부른 노래와 팬 사인회, 응원봉 등 팬덤 문화가 더해지면서 영화 속 K-팝은 ‘케데헌’의 정체성이자 흥행의 핵심 동력이 됐다.

목소리 연기와 보컬도 한국인으로 캐스팅했다. 영화 속 빌런인 귀마는 이병헌, 진우는 안효섭, 루미는 한국계 미국인 아덴 조가 맡았다. 강 감독은 "아시아 특히 한국인의 목소리를 메인으로 내세운 애니메이션이 없어 긴장됐다. 하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국 배우들과 작업해야 실제 한국 문화에 부합하는 정당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컷. /제작사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컷. /제작사

곳곳에 포진한 한국 스타일 

‘케데헌’에는 ‘한국 스타일’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10가지.

①전통 문양-극 중 무대 세트에 ‘일월오봉도’, 단청 등 전통 한국 문양 사용.
②노리개-헌트릭스 무대의상에 달린 노리개.
③루미 무기-실제 무속에서 사령을 다스리는 데 사용한 ‘사인검’을 모티브로 디자인.
④갓-외국인들이 더 좋아하는 갓을 쓰고 등장하는 저승사자.
⑤호랑이와 까치-한국의 민화 ‘작호도’에서 착안한 영화 속 마스코트.
⑥한약-컨디션이 나쁠 때는 한약.
⑦서울 풍경-북촌 한옥마을, 남산 서울타워, 낙산공원 성곽길…지하철 임산부 배려석도 등장.
⑧음식과 매너-컵라면과 김밥, 설렁탕 등은 물론 숟가락 놓을 때 냅킨 먼저 까는 것까지.
⑨때밀이 타월-목욕할 때 선택 아닌 필수.
⑩서열-멤버 중 가장 어린 조이를 막내, 사자보이스를 부를 땐 한국어로 후배.

꼼꼼한 검수작업도 동시에 진행됐다. 예를 들어 루미의 설렁탕 식사 장면에서 처음에는 뚝배기를 맨손으로 잡았지만, 한국 직원들이 뚝배기의 뜨거움을 지적해 수정했다. 또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는 콩글리시로 한국계 관객들에게 공감과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예상치 못한 수혜자 국립중앙박물관

‘케팝헌’의 글로벌 흥행에 국립중앙박물관이 뜻밖의 특수를 누리고 있다. 넷플릭스 공식 굿즈(Goods)의 아쉬운 퀄리티와 부담스러운 배송비가 소비자들 발목을 잡으면서, ‘뮷즈’라 불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뮤지엄 굿즈 아이템을 대안으로 찾고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와 까치를 묘사한 배지와 갓을 쓴 볼펜, 갓 모양 책갈피 등이 연일 품절 사태를 빚고 있다. 박물관 온라인 상품관의 일평균 방문자 수는 26만 명, 사전예약을 해도 한 달 뒤에나 제품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

호랑이와 갓 쓴 까치.
호랑이와 갓 쓴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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