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박재형

이재명 대통령이 제80차 유엔총회 참석차 22일(한국시간) 한국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유엔총회에서 이 대통령은 총회 기조연설에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공개 토의를 주재할 예정이다.

이번 회의는 오는 11월 한국에서 예정된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린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에 대한 미국 등 외교 전문가들 시선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대통령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제 외교무대 전면에 나서는 이 대통령은 최근 유엔 주재 대사로 차지훈 변호사를 임명했다.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차 대사는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로 그의 사건 변호인을 맡았던 인물이다. 유엔대사라는 막중한 자리가 대통령과의 친분만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다.

세계적으로 유엔대사는 외교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직책이며, 외교 정책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자리가 중요한 이유는 대사가 유엔 주재 국가 외교 사절단의 수장으로 활동하며 해당 국가의 ‘얼굴과 목소리’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미국 경우 유엔대사의 주요 책임은 안보리에서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대사는 자국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수호하고 국제 조약에서 국가 입장을 협상하는 임무를 맡는다. 식량 안보 및 기아 방지 같은 문제들을 다루며, 국제적으로 자국 정부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대변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또한 대사는 유엔 내 사건들에 대해 미국 국무부에 정보를 제공하고 권고안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모든 유엔 회원국의 대사가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지만 한국 유엔대사의 책임은 특히 막중하다.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에 있어 유엔은 북한과 함께 중국·러시아 등과 언제든 직접 접촉이 가능한 현장이다. 만약 북한이 어떤 도발적 행위를 할 경우 유엔에서는 즉시 관련국들과 함께 대북 제재 등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때로는 상황 발생 시 대통령실이나 외교부 본부의 지시 이전에 유엔대사 스스로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한다.

이처럼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만큼 유엔대사는 협상·의사소통·리더십·국제 문제와 문화적 차이에 대한 깊은 이해를 포함하는, 다양한 외교적 역량과 경험을 매우 중요시한다. 유엔대사에게는 또한 강력한 협상 및 갈등 해결 능력이 필수적이다. 안보리나 총회 같은 기구 내에서 자국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합의점을 찾아 협정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을 유엔대사직에, 특히 대통령과의 개인적 유대 관계를 근거로 임명하는 것은 여러 우려를 낳는다. 외교 전문가들은 자격 미달의 인물을 대사직에 기용하면 국제 관계와 국제적 신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험이 부족한 대사는 효과적인 외교 활동보다는 대통령 입장을 전달하는 연락관 역할에 그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대사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대사관 업무 우선순위를 조정하며 일상적인 외교 업무를 소홀히 한 사례도 있었다. 무엇보다 자국의 이익을 증진하는 복잡한 과정에 대한 훈련과 배경이 부족하면 중대한 직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더욱이 이러한 인사는 공직에 평생을 바친 직업 외교관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 더해 안보리 주재까지 자신이 직접 나서면서 유엔대사로는 외교 경험이 전무한 측근을 임명했다. 이는 다자간 외교의 최전선이라는 유엔에 대한 기본 이해조차 없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황당한 인사가 가장 중요한 외교 현장마저 대통령의 손바닥 위에 두고 조종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면, 이는 사상 최악의 외교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