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은 슬프다. 나는 끔찍이 사랑한다는데 상대는 내가 끔찍하단다. 나는 좋아서 죽을 것 같다는데 그냥 내가 죽었으면 좋겠단다. 어쩌랴, 사랑하는 게 약점이고 죄인 것을. 그렇게 가슴에 멍을 남기고 끝나는 게 보통의 짝사랑이다.
그런데 가끔 같은 대상을 또 짝사랑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어느 각도로 봐도 이상한 거다. 까였으면 마음을 접는 것이 에티켓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자신의 사랑이 진짜라는 증명이다. 일방통행을 자제하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사랑이 아니라 스토킹이다. 집착이고 비정상적인 몰입이며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단계다. 세 번이나 차여놓고도 또 북쪽을 향해 헤벌쭉 구애를 하는 남쪽 진보 정권 이야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평화가 경제다,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는, 좌익들의 틀에 박힌 ‘평화 구매론’을 읊으셨다. 7월 청와대 기자 회견에서는 "전쟁 중에도 외교와 대화를 한다. 대화를 전면 단절하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라며 전임 대통령을 깎아내렸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50년 간 해오던 국가정보원의 대북 라디오·TV 방송을 전면 중단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때도 끊지 않았던 방송이다. 그래놓고 한다는 말이 북한이 선제 조치를 취해서 우리도 그에 맞는 조치를 했다는 설명이었다.
참으로 가증한 논리다. 맞다. 북한은 작년 1월 대남 방송 송출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유는 우호와 전혀 무관하다. 2023년 말 북한은 ‘두 국가’ 방침을 제시했다. 두 국가 방침이란 한국을 미국의 꼭두각시로 규정하고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존재라는, 과거의 대한(對韓) 인식을 폐기하고 아예 상대조차 할 필요 없는 ‘별개의 국가’로 여긴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북한은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뒤 아예 상종을 하지 않겠다며 대남 방송을 중단한 것일 뿐이다.
이재명 정권이 대북 방송을 중단한 이유는 뻔하다. 김정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향후 어떻게든 말이라도 섞으려고 밑밥 삼아 깐 아양이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답이 빨리 왔다.
며칠 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김여정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논평을 냈다. 이재명 정부가 자기네 관심을 끌기 위해 아무리 동족 흉내를 피우며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북조선의 대적인식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앉을 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여정은 이재명 정권 50여 일에도 점수를 매겼다. 앞에서는 조선반도 긴장완화요 조한관계 개선이요 귀맛 좋은 장설을 늘어놓았지만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자기네와의 대결기도는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대북 방송 중단 조치에 대해서도 진즉에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가역적으로 되돌려 세운 데 불과해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된다고 낙제점을 줬다.
이재명 정권, 참 난처하게 됐다. 아직 무릎도 안 꿇고 반지도 보여주기 전인데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라며 면박을 당했으니 말이다. 아마 8·15 경축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이런 얘기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남북 정상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언제라도 콜 받으면 바로 평양 가겠다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진보 대통령이라는 사람들 착각하는 게 있다. 김정일을, 김정은을 자신과 동급으로 여기는 것이다. 북한은 3대째 내려오는 왕조국가다. 반면 한국 대통령은 5년짜리 시한부 권력이다. 애초에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김정은은 푸틴과 친하고 트럼프에게 친서를 받는 몸이다. 한국 대통령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걸 모르니 바보짓을 하는 거다.
아직은 담을 쌓고 있지만 북한이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이 정권이 얼마나 순진한지 알려주는 북한 내부 문건이 있다. 다음 칼럼에서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