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거부한 '혁신 아이콘'
애플이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 최근 열린 개발자회의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았고 주주들로부터 집단 소송까지 당했다. 업계 관계자들도 전문가들도 그리고 공학도들도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도 ‘애플은 투자가치가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AI 시대에 필요한 ‘정보의 접근성’과 애플이라는 회사의 ‘정보의 폐쇄성’이 전혀 맞물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현상이 이제는 일반인들 눈에도 보이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공룡의 무력함이다.
지금 시대에 겨우 예쁜 UI라고?
애플의 팬들까지 등돌리게 만든 가장 큰 사건은 최근 WWDC25(애플 주최 대규모 개발자회의)였다. ‘리퀴드 글라스’(Liquid Glass)라는 UI(User Interface:제품이나 서비스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시각적 요소) 개편으로 XR시대 재도전에 나섰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WWDC25를 지켜본 전문가들 반응은 처참했다. 일반인들도 ‘장난하나?’식의 반응을 보였다. 애플이 무언가 새로운 AI를 내놓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내놓은 것은 UI. 말만 거창하며 실체는 없다며 조롱하고 있다.
구글 글라스, MS 홀로렌즈, 메타 모두 배터리와 발열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던 스마트 글라스는 소비자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그런데 애플은 배터리 이슈는 쉬쉬하면서 UI/UX 디자인을 바꿨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지금 같은 AI 시대에 애플이 내놓은 게 유리 같은 UI라고?" 같은 반응이 지배적인 것은 당연하다.
‘혁신의 아이콘’ 애플도 이제는 옛말이다.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서 자신이 쌓아온 성공의 공식에 매몰되고 있다. 진짜 혁신은 배터리와 하드웨어, 그리고 구조적 전환에서 나오지 예쁜 UI나 미학적 포장에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는 있을 것이다.
주주들로부터 집단 소송 당해
애플은 지난 22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AI 사기 혐의로 집단 소송까지 당했다. WWDC에서 실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도 없으면서 아이폰16의 AI 이미지를 홍보했다는 이유다.
애플은 지난해부터 인공지능 음성비서 시리의 진화를 예고해 왔다. 하지만 WWDC에서도 자체 AI 모델의 성과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주주들은 애플이 시리에 높은 수준 AI 기능 탑재의 중요성을 줄여 발표해 아이폰 판매와 주가에 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또 AI 기능 탑재가 늦어져 수천억 달러의 숨은 손실을 입혔다고 밝혔다. 주주들은 소송에서 CEO 팀 쿡, 최고재무책임자 케반 파레크 등을 피고로 적시했다. 이들 모두 거짓말과 증권사기 의심을 받고 있다.
애플 주가는 곤두박질 쳤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애플 주가는 지난해 12월 26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지금 거의 4분의 1로 내려갔으며, 이로 인해 약 9000억 달러(약 1245조6000억 원)의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지정학적 리스크, AI 리스크
트럼프 정부 관세 정책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AI 기능이 없다는 것이 소비자들이 애플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트럼프 대통령은"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아이폰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전면 이전할 경우, 제조 비용은 물론 제품 가격까지 급등할 수밖에 없다.
AI에 관해서는 애플이 경쟁사들보다 크게 뒤처져 있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 삼성전자 같은 경쟁사가 우월한 것은 물론이고, 250유로(약 39만 원) 수준 중국산 스마트폰의 AI 기능과도 비슷한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해석이 많다.
애플은 오랜 기간 ‘온디바이스 AI’를 고수해왔다. 아이폰·아이패드·맥 등 자사 기기 내부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개인정보 보호에 강점을 갖지만, 대규모 연산과 실시간 업데이트가 요구되는 생성형 AI 시대에는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구글이나 MS는 방대한 클라우드 인프라와 서버 기반 모델을 바탕으로 언제 어디서든 고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반면 애플은 각 디바이스 내의 연산 능력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처리 속도나 모델 크기, 정교함 측면에서 불리하다.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수집을 제한하는 애플의 프라이버시 철학도 기술 진화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AI 총괄 팀장 메타로 이적
AI 팀을 이끌던 루오밍 팡이 얼마 전 사직서를 내면서 애플의 위기감이 세상에 드러났다. 2021년 구글에서 애플로 합류한 팡은 100명 규모의 ‘애플 파운데이션 모델’(AFM) 팀을 이끌어온 수석 엔지니어로, 애플 인텔리전스와 기기 내 AI 기능을 구현하는 핵심 모델 개발을 주도해왔다.
루오밍 팡이 애플에 사표를 던지고 옮긴 곳은 페이스북 회사 메타.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가 루오밍 팡에게 내건 조건은 2억 달러(약 2780억 원)이다. 이 금액이 알려지자 전 세계 언론에서도 난리가 났다. 메타가 작정하고 경쟁사의 핵심 프로젝트를 뿌리부터 뒤흔들어 와해시키려는 공격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애플로서는 수년간 공들였던 애플 인텔리전스의 리더를 빼앗긴 것이다. 해고와 이직이 자유로운 자본주의 미국이라 가능한 일이다. 과연 루오밍 팡이 인수인계를 잘하고 나갔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루오밍 팡뿐만 아니라 AI 수석 부사장인 존 지아난드레아도 올해 3월 시리 개발팀 수장에서 해임됐다. 애플 AI 개발팀의 임원급은 거의 떠나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칼을 간 저커버그의 애플 공격
애플에 대한 메타의 공격은 2025년 4월 발표된 ‘라마 4’의 실패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멀티모달 기능을 갖춘 AI 모델인 라마4는 출시 자체도 이슈화되지 못할 정도로 외면당했다.
저커버그로서는 엄청난 모욕과 동시에 칼을 가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저커버그는 ‘다시 창업자 모드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고, 자사의 AI 팀을 구조조정하고 리더를 강등시켜 버렸다. 현재 메타 직원들은 주말을 반납하고 매일 야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저커버그 목적은 AI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 자체를 끝내 버리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할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첫 목표가 된 것이 애플과 챗GPT의 오픈AI이다.
저커버그는 일단 루오밍 팡을 천문학적 금액에 데려옴으로써 AI 인재들이 더 이상 애플을 선택하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엔지니어의 습성 중 하나는 본인보다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들에게 배우고자 하는 것인데, 인재들이 다 떠나버린 애플에 누가 가겠는가.
전 세계가 격변하는 중 우리나라는 무얼 하고 있는가. 씁쓸한 답변밖에 해줄 수 없다.
대한민국 박사급 AI 현업자들 중에 연봉 2억이 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AI 인재들은 미국과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나라나 기업의 대우도 다르며 연봉부터 너무 차이가 난다.
딥시크의 CEO 량원펑은 중국에서 영웅이 되어있다. 나라에서 엄청 띄워주고 투자도 조 단위로 해주고 있다. 중국 학생들 장래 희망 1위는 AI 개발자다. 매년 중국의 수능 ‘가오카오’에는 1335만 명이 응시한다. 그 중 최상위권 5% 인재만이 국가가 지정한 한국의 서카포(서울대·카이스트·포항공대)급 명문 이공계에 입학한다. 그 5%는 약 90만 명으로 2024년 대한민국 수능 응시생 전체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숫자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인재 풀(Pool)은 1천몇백 명 단위다. 그 중 60%~80%가 의대를 바라보고 있다.
AI 인재들이 스포츠 스타급 연봉을 받으며 세상을 이끌어가는 시대이다.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도 애플처럼 될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 바로 지금임을 깨달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