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
박인기

북은 오래된 타악기다. 한자에서 ‘종’(鍾)이라는 글자를 ‘쇠북 종’이라고 하는데, 이는 곧 ‘쇠로 만든 북’이라는 뜻이다. 종도 북의 일종이었음을, 북이 종 이전에 있었음을 말해 준다.

북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다는 데서, 가죽을 제공하는 어떤 희생물의 존재를 함께 떠올릴 수 있다. 북소리는 가죽 막이 울리면서 나는 소리다. 가죽 막의 두께가 북소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북을 악기로 분류하는 것은 인류 문명사에서는 후대의 일이다. 북은 악기 이전에 인류가 원시 부족 사회에서 수렵이나 전투를 수행하는 데 동원되는 사회적 도구이기도 했고, 신과 교접하는 초월적 의식(transcendent ritual)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장치이기도 했다.

인류의 원시적 신앙 체계인 샤머니즘(shamanism)에서 초자연적인 존재와 직접 교류하며 미래를 점치고 병을 고치는 존재를 샤먼(shaman)이라고 했는데, 샤먼이 집행하는 무(巫) 의식에는 북소리가 중요하게 가담했다.

북소리는 인간에게 어떤 신령한 교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영험한 현상을 이루게 하는 소리로 인식됐다. 시베리아의 샤먼들은 북소리를 인간의 심장 뛰는 소리로 유추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북소리는 인류학적 소리 원형을 지니고 있다.

북소리의 상징은 다채롭다. 위엄과 위세의 상징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전쟁터에서 독전(督戰)의 선봉이 되기도 한다. 인해전술로 일컬어지는 대량의 인명 소모전도 북소리에 따라 ‘돌격 앞으로’에 투신하게 하는 메커니즘을 구사한다. 그런가 하면 북소리는 치유의 소리로 환자의 심장에 가닿기도 한다.

근래에 드럼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외로운 현대인이 내 ‘심장의 소리’를 찾아가는 걸까. 현대사회가 지닌 영성의 빈곤을 북소리가 구제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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